순간 법정이 정적에 휩싸였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인도, 방청석의 모든 이들도 그 피켓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피해자의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옆에 앉은 미국인 노부부는 그 여인의 시부모였다.
아…. 이 비극을 어찌하랴. 그 아내가 한국 여자라니. 저 어린아이, 아버지를 잃은 저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그 순간, 나는 피고석의 청년을 위로하러 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한 가정을 무너뜨리고, 젊은 한국인 아내를 홀로 남기고, 아이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그 사건 앞에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던 내 사역이 그때만큼은 의심스러웠다.
‘저 희생자들은 누가 위로하나. 저들은 곧 잊혀질 텐데….’ 혼란과 부끄러움,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판결이 내려졌다. 50년형.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검사와 판사, 변호인 간 협의를 통해 25년형으로 감형하려 했으나, 그날 법정에서 울부짖던 아이를 본 판사가 형량을 두 배로 늘렸다고 했다.
판결이 내려지자 내 옆에 있던 피고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피해자 아내를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사역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일인가.’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떠오르고,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몇 달 뒤 캘리포니아의 한 교도소에서 희생자 가족을 위한 사역 세미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했다. 그곳에서 나는 미국 사회 속에서 잊혀 가는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오랜 시간 씨름해 온 이들의 헌신을 보았다. 그 자리를 통해 나는 배웠다. 사역의 균형과 영혼을 다루는 겸손을.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먼 곳에 수감된 그 형제를 다시 찾아갔다. 그의 영혼은 여전히 어두웠고, 기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몇 년 후, 또다시 그가 마음에 밟혀 찾아갔을 때 그는 정신병동으로 이감돼 있었다. 그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한편 지금도 종신형을 살며 30년 넘게 교도소에 있는, 이제는 50대가 된 한 형제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이렇게 적어 보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늘어만 갑니다.” 그 고백을 읽으며 나는 깊이 생각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에는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을 만난 자에게는 교도소조차 은혜의 학교가 된다.
철창 안에서 회개한 자는 비로소 자유를 배우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은 자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지금도 내 마음에는 두 여성의 얼굴이 남아 있다. 가해자의 어머니와 피해자의 아내, 두 여성의 눈물 속에 비친 인간의 연약함과 죄로 인해 갈라지고 상처 입은 두 가정의 모습. 눈물로 기도하던 두 여인을 기억하며 나는 다시 무릎 꿇는다. 주여, 긍휼을 베푸소서. 그들의 눈물을 닦으시고, 우리가 모두 주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다시 서게 하소서.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