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겨울 초입에 대형 물류센터로 다시 알바를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험이 있어 포장장으로 배치되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붙어 있는 작업대에 들어가 오랜만에 포장을 시작했다. 워터(상품을 가져다주는 역할)가 작업대 옆으로 상품이 담긴 집품 박스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주소가 적힌 운송장이 작업대 위에 있는 작은 프린터에서 나오지 않았다. 프린터 종이가 다 떨어진 거다. 종이를 어떻게 교체하는지 몰라 관리자에게 가서 물었다.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관리자는 대번 화를 냈다. ‘그런 것도 몰라요?’ 얼굴까지 빨개져 있었다. 당황했다. 관리자가 프린터 종이 교체하는 법을 가르친 적은 없었다. 더구나 처음 보는 관리자였다.
여기 관리자들은 화를 잘 낸다. 내가 포장장으로 와 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에도 그랬다. 운송장 스캔을 안 하고 그대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실수를 했다. 사실 상품에 운송장이 붙어 있어 배달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내부적으로 작업 완료가 인식되지 않는다. 그때 관리자는 일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으면서도 처음 보는, 나이 많은 내게 굉장히 화를 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통로에 나를 세워 두었다.
결국 프린터 종이 교체하는 일은 뒷자리 알바에게 물어 해결했다. 오후 4시 반 마감시간이 가까워지자 관리자가 자리에 들이닥쳤다. 손에서 스캐너를 뺏어 들더니 작업대 옆 집품 박스에서 상품을 마구 꺼내 스캔을 하고 내게 포장을 넘겼다. 포장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른 상품을 꺼내 다시 바코드 스캔을 하고는 프린터에서 나온 운송장을 작업대 여기저기 붙이는 걸 반복했다.
여러 운송장이 여기저기 나부껴서 나는 어느 상품에 어느 걸 붙여야 하는지 헷갈렸다. 그러나 그걸 관리자에게 묻기도 무서웠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그런 걸 물어보면 화를 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강 기억나는 대로 붙였다. 아마 실수를 했을 것 같다. 이걸 ‘선검증’이라고 부른다. 작업대 위에는 ‘선검증 금지’라고 빨간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선검증을 하면 포장을 끝내지 않아도 많은 물량을 처리한 것처럼 컴퓨터에 인식이 된다. 그러면 관리자는 자기 책임 구역에서 최대 물량을 달성하게 된다. 편법이다. 마감은 하루 세 번 오전 1번, 오후 2번 있는데 이때마다 온갖 편법이 횡행했다.
회사는 마감 시간에 맞춰 물량을 얼마나 달성하느냐에 따라 관리자의 업무 평가를 하는 듯했다. 마감만 가까워지면 죽을 듯이 뛰어다니며 알바들에게 ‘빨리빨리 하세요!’라고 외친다. 그러면 덩달아 집품 박스를 가져다주는 워터도 죽을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한다. 전쟁터가 된다. 밤에는 더 힘들 것이다.
회사는 빠른 배송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집에서 회사의 상품을 받아들면서 나는 가끔 당황스럽다. 이렇게 빨리 와도 될까? 하루쯤 늦게 받아도 되는데. 현장에서 몸과 영혼이 상하는 걸 봤고 죽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