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명보험 업계의 ‘일탈 회계’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상충하는 회계 기준이 이미 국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더는 불필요한 논란의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올해 결산부터 논란의 유배당보험 계약 관련 배당금을 ‘자본’으로 재무제표에 올릴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은 1일 한국회계기준원·한국공인회계사회 등 회계 관련 기관 및 전문가가 참석한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열고 생명보험협회가 질의한 삼성생명의 국제회계기준(IFRS17)상 일탈 회계(계약자지분조정)를 더는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삼성생명은 1980~90년대 유배당보험 상품을 판매해 받은 보험료로 삼성전자·삼성화재 등 계열사 주식을 사들였다. 삼성그룹 지배 구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들 주식은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고, 삼성생명은 이를 팔았을 때 보험 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배당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별도의 부채 항목으로 처리해왔다.
문제는 2023년 IFRS17 도입을 앞두고 불거졌다. IFRS17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면 자본으로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생명과 생보협회는 새 규정을 적용하면 부채가 과소 표시되는 등의 ‘회계상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기존 처리 방식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고 2002년 금감원이 이를 승인했다.
논란은 삼성생명이 자사주 소각 여파로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매각한 지난 2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회계기준원과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일탈 회계 중단’을 촉구했고, 금감원도 이찬진 원장 취임 이후 국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 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일탈 회계 관련 논의가) 정상적인 국제회계 기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중단은 회계 정책의 변경이지 ‘오류 수정’이 아니다”라면서 “심사·감리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결정으로 삼성생명은 올해 결산 재무제표부터 ‘유배당 계약자 몫’을 다른 보험계약과 구별해 재무제표에 표시하게 됐다. 삼성전자 주식의 약 8.51%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계약자지분조정 금액은 최근 삼전 주가 상승에 힘입어 9월 말 기준 약 12조8000억원까지 불어난 상태다. 본래 유배당보험 계약자의 몫은 별도 보험계약부채로 계상되지만, 금융 당국과 업계는 삼성생명이 삼전 지분에 대한 매각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운 만큼 ‘자본’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결정으로 기존 보험 계약자가 받게 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계약자 배당은 실현이익이 발생할 때 지급하는 것”이라면서 “회계상 표기가 변경돼도 계약자 보호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계약자지분조정을 자본으로 처리할 경우 계약자의 몫이 장부에서 사라지는 문제는 주석 별도 공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