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지난달 26일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가 명백한 인재임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타이포 지역의 웡푹코트 아파트 단지의 화재 참사 피해가 커진 데는 보수 공사 시공업체의 안전 규정 위반 외에도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가 급속도로 번진 데는 창문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가연성 스티로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대나무 비계를 감싸는 형태로 설치된 안전그물에서 시작된 불이 스티로폼을 타고 순식간에 최상층부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서 스티로폼 사용을 규제하는 법이나 규정은 홍콩에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 건축안전연구소 소장 빈센트 호 쿠이입은 “안전그물과 달리 스티로폼의 내화 성능에 대한 규정이나 규제는 없다”면서 “가격이 비싼 내화 스티로폼 사용을 기피했을 것”이라고 SCMP에 말했다.
웡푹코트 보수 공사는 62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이지만, 안전 규정 위반으로 두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업체가 선정됐다. 당국은 이례적으로 웡푹코트 8개 동에 대한 보수 공사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업체 간 담합이나 담당 공무원과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곳 주민들이 지난해 7월 보수 공사가 시작된 후 여러 차례 화재와 안전 위험 등에 대한 민원을 당국에 넣었는데도 “문제없다”는 답변만 받은 사실도 공개됐다. 주민들은 당시 적절한 조사와 조치가 이뤄졌다면 이번 화재를 막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 현장에선 인부들이 수시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렸고 작업 편의를 위해 화재 감지기와 경보기를 꺼놨다. 경보기가 울리지 않으면서 상당수 주민이 건물 전체로 불이 번질 때까지 화재 사실을 알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
공식 애도 기간 마지막 날인 이날도 사고 현장 인근 공원에 설치된 희생자 추모 공간에는 시민들의 줄이 2㎞ 넘게 이어졌다. 전날에는 2시간 넘게 기다린 이들도 많았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