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금융 당국의 총량 관리 기조에 부응해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섰던 은행들이 내년 대출 증가율도 올해와 비슷한 2% 안팎을 목표로 할 방침이다. 긴축적인 목표 설정이 이어지면서 내년에도 고비마다 ‘대출 절벽’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은행들에 연간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제출하도록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매년 주요 거시지표가 나오는 12월쯤 은행권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해왔고, 올해도 조만간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취지로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연간 가계대출 잔액 증가율이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해왔다. 한국은행·국회 예산정책처 등 주요 기관들이 내년 실질 GDP 증가율을 1.8~1.9%,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2.1% 안팎으로 내다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3%대 후반 이내에서 증가율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은행권은 자발적으로 상한선의 절반 수준에서 목표치를 설정하는 분위기다. A은행 관계자는 “성장률 전망치가 내년과 비슷했던 올해도 연초에는 2% 정도로 목표치를 제출했다”면서 “내년 목표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제출할 것 같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도 “당국이 ‘생산적 금융’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올해보다 높은 숫자를 제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처럼 강도 높은 가이드라인을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20일까지 7조8953억원 증가했다. 앞서 당국에 제출했던 증가액 한도 목표(5조9493억원)를 32.7% 초과한 액수다.
은행들은 당초 제출한 총량 목표를 맞추기 위해 지난달부터 잇따라 올해분 주택 관련 대출을 차단하고 ‘관리 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KB국민과 하나은행은 각각 신규 주택담보대출 접수를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주담대와 전세대출 등의 영업점 한도를 월 10억원으로 제한했다. 그럼에도 목표치를 초과하는 은행은 금융 당국에 의해 내년도 대출 총량을 삭감하는 ‘페널티’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면 내년에도 연말 셧다운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나온다. B은행 관계자는 “당장 새해에는 우리 대출모집인들도 신년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연초에는 (대출이) 풀리는 느낌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총량 관리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은행들이 도중에 자율적 셧다운에 나설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 당국은 이 같은 우려를 일축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몇몇 시중은행이 연말까지 한도 목표를 초과할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목표치 초과에 대한 페널티 등이) 내년까지 반영되는 부분은 미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대출 절벽’에 대한 우려가 실현되지 않도록 금융위원회와 긴밀히 공조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