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는 안전에 대해 정반대 철학을 갖고 비행기를 만들어왔다. 보잉의 조종석은 “기계를 믿을 수 없다”는 대전제 위에 설계됐다. 기계는 도구일 뿐, 판단은 인간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종사에게 강력한 통제권을 부여하고 있다. 737, 747, 777 등 보잉 기종의 일관된 특징은 언제든 조종사가 원하는 대로 비행기가 반응한다는 점이다. 자동항법장치로 비행하거나 추력제어시스템이 개입한 상황도 손쉽게 무력화해 수동 조작이 가능케 했다.
반면 에어버스는 “인간은 실수를 한다”는 전제 아래 조종석을 설계했다. 일관성을 가진 기계로 실수의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에어버스 전자비행제어시스템은 조종사의 명령을 컴퓨터가 필터링하는 구조를 갖췄다. 기체가 너무 기울거나 엔진에 문제가 생길 조작은 비록 조종사가 했더라도 반영되지 않는다. 보잉의 조종간은 자동 비행 중에도 조종사를 기다리듯 전후좌우 움직이지만, 에어버스 조종간은 아무리 끝까지 당겨도 시스템이 허용하는 작동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차이는 파일럿의 역량이 승패를 가르는 전투기 기술력을 토대로 보잉 민항기가 발전했고, 후발주자 에어버스가 그걸 넘어서려 기계 장치에 중점을 두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개인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조종사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공동체를 앞세우는 유럽에서 “시스템에 맡기자”는 인식이 자리 잡은 건 문화적 차이도 작용했지 싶다.
보잉의 잦은 사고가 대부분 조종사 과실로 귀결되고, 엊그제 에어버스가 컴퓨터 오작동 우려에 대규모 리콜 사태를 낳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지 싶다. 조종사에게 많은 역할을 주니 실수도 많이 나오고, 시스템에 통제를 맡기니 작은 오류에도 비행기가 못 뜨지 않겠나. 인간을 믿을 거냐, 기계를 믿을 거냐. 이렇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의 정답은 항상 그 중간 어딘가 있던데, 이런 질문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인간은 불완전하니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AI는 위험하니 인간이 견제를 해야 할까.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