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상진료체계는 중증외상환자가 제시간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통상 1시간 정도인 ‘골든아워’ 안에 치료를 받아야만 생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외상진료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17개 권역외상센터별로 치료 성적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전담전문의 인력 규모는 최대 7.7배 차이로 벌어져 있다.
1일 국립중앙의료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권역외상센터별 사망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증외상환자 생존지수(W-Score)는 울산대병원(2.5981), 아주대병원(2.2818), 전남대병원(1.7158), 원주기독병원(1.0265), 제주한라병원(1.025)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생존지수는 생존 예상 외상환자를 100명으로 가정했을 때 추가로 살려낸 환자 수를 뜻한다. 양의 값이고 내원환자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환자를 살렸다는 의미다. 지난해 중증외상환자를 가장 많이 수용한 외상센터는 아주대병원(3477명)이었다.
생존지수 하위권인 외상센터 5곳의 치료 실적을 보면 순위가 가장 낮은 A센터의 생존지수는 3.0647였고 B센터 -1.0462, C센터 -0.4513, D센터 -0.4512, E센터 -0.3802 순이었다. A센터에선 100명을 살린다 해도 추가 사망자가 3명 발생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치료 격차는 인구 규모를 반영하지 못해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외상학계 관계자는 “치료하는 환자가 많을수록 외상 성적도 더 나아지고, 의료진이 많을수록 외상센터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생존지수 하위권 센터에 대해 “환자는 적고 의료진은 이탈하는 등 지방소멸과 유사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외상센터의 만성적인 인력난도 문제로 꼽힌다. 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지난달 외상센터 전담전문의 인력은 센터별로 최소 3명에서 최대 23명까지 7.7배 차이를 보였다. 23명의 전문의가 있는 아주대병원은 당직 교대가 가능하지만, 지역의 한 외상센터는 3명에 불과해 정상적인 교대 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지역별로 외상센터가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이지만 정부의 평가 체계는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 운영지침을 보면 모든 외상센터는 1년에 중증외상환자를 200명 이상만 보면 된다. 정부 지원도 대부분 인건비 위주다보니 각 병원이 자발적으로 더 많은 환자를 수용하고 진료 체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위권 외상센터는 환자를 더 받고 싶어도 병상 부족 문제로 받을 수 없고, 하위권 외상센터는 의료진 부족 등으로 환자 수용에 제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도 외상센터 개편 방안을 고심 중이다. 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확장형 권역외상센터 지원 건’을 편성해 국회 심사를 받고 있다. 권역외상센터 2곳을 거점화해 외상대응체계를 보강한다는 취지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