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선 산상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성경 원어를 보면 오늘 본문 11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앞엔 ‘아우톤’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를’이란 뜻의 목적어입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 욕심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떼를 써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잘못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목적어까지 번역하면 11절은 “그를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로 보는 게 맞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도 ‘아우톤’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로 읽어야 합니다.
주님은 산상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가 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마 5:39)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동행하라.”(마 5:41)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 이렇게 살면 우리 가정도 일터도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렇게 살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 18절을 통해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고 탄식합니다. 우리는 산상 설교의 가르침대로 살 능력이 전혀 없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의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선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술 취함과 대비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술에 취해 술의 더러운 행동이 밖으로 나타나듯이, 반대로 내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 성령이 밖으로 흘러넘치게 됩니다.
내 생각과 감정, 의지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님이 나의 삶의 현장에 흘러넘치면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내가 나로 충만해서 그것으로 살면 내 삶 가운데 계속해서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불평 분노 같은 감정이 나타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내 삶 가운데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과 같은 성령의 열매(갈 5:22~23)가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에겐 성령님이 나의 사역의 현장에 흘러넘치고 성령의 은사도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10절은 성령의 은사들을 말하면서 그 은사들이 성령을 나타내심이라고 말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처럼, 사역의 현장에 성령의 은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 사역하는 사람은 참새와 같습니다. 참새는 자기 힘으로 날개를 퍼덕거리지만 멀리 날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로 사역하는 사람은 독수리와 같습니다. 독수리는 날개를 퍼덕거리지 않습니다. 커다란 날개를 펴서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 저 멀리까지 날아갑니다. 성령의 바람에 우릴 내어 맡깁시다. 성령의 은혜를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박성일 목포하나교회 목사
◇전남도청 앞에 있는 목포하나교회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버려진 창고교회에서 복음 전도와 제자훈련을 통해 목포 지역을 회복시키는 교회로 세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