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동 칼럼] 학원의 교습 시간을 늘린다고?

입력 2025-12-02 00:50

유아·초중고 사교육비 33조
학령인구 줄어도 지출은 최대

OECD 국가 최고 수준 증가율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건 옛말

끊어진 교육 사다리 복원해야
교습 시간 연장보다 급한 건
공교육 살리기와 정상화

“조선의 양반이나 잘사는 사람들은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며 어릴 때부터 선생을 두어 글공부를 시키는데 이것은 이 민족이 매우 중시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읽습니다. 현인들의 저서를 읽고 이를 이해하며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랄 만합니다.”

1653년 제주도 해안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이 고국으로 돌아가 기록한 ‘조선왕국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방인이 본 조선의 교육열은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우리나라 부모들의 극성스러운 교육열은 370여년이 흐른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더 과열되고 전쟁터를 방불케할 정도다. 밤 10시, 서울 대치동 학원가.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과 그들을 태우기 위해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선 노란 버스, 비상등을 켠 채 대기하는 승용차들의 행렬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대치동의 밤’은 해마다 더 깊어지고 치열해진다.

이는 수치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뼈아픈 대목은 1년 사이 학생 수가 521만명에서 513만명으로 8만명이나 줄었다는 점이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사교육비 총액은 2021년 23조4000억원, 2022년 26조원, 2023년 27조1000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4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소득·가정형태·지역에 따른 격차도 고착되는 징후가 뚜렷하다. 초중고뿐만 아니라 영유아 사교육 규모도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공개한 ‘2024년 유아 사교육비 시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석 달 동안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연간으로 추정하면 최소 3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아 사교육비까지 더하면 지난해 학원비로 지출된 비용은 무려 33조원에 이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를 손보고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지만, 이 거대한 흐름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의회가 고등학생 대상 학원의 교습 시간을 현행 밤 10시에서 자정으로 2시간 연장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오전 5시~밤 10시인 초중고교생 대상 학원·교습소 시간을 고등학생만 자정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정지웅 서울시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서울 고등학생의 학습권 보장과 타 시도 교육청과의 교육 형평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밤 10시 이후 교습을 허용한 시도가 많은데 서울이 역차별받는다는 얘기다. 현재 대전·울산 등 8개 시도는 자정까지, 전남은 밤 11시 50분, 부산·인천·전북은 밤 11시까지 학원 수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례가 개정될 경우 학생 수면과 휴식 시간을 단축시키고 사교육비 폭증을 가져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최근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사교육비 상승률을 비교한 통계를 보면 한국은 5~7%대의 연평균 상승률로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일본은 1~3%대의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2~4%, 호주는 1~2%대를 유지했다. 특히 ‘교육 강국’ 핀란드는 사교육비가 거의 증가하지 않거나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들 나라는 공교육 투자에 집중하면서 학급당 학생 수가 적고 맞춤형 교육을 확대해 사교육 수요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입시제도의 안정화와 공교육의 내실화로 사교육 수요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처럼 교육은 한때 서민의 계층 이동 사다리였다. 하지만 사교육 수요가 폭발하면서 교육은 되레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빼앗고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공교육 경쟁력 강화가 사교육과 선행 학습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애꿎은 입시제도를 바꾸려하거나 교습 시간을 늘리려하기 전에 공교육 붕괴부터 막는 것이 우선이다. 교실 혁명을 통한 공교육 살리기는 시대적 과제다. 학교에선 잠이나 자다 학원으로 달려가는 ‘학원 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 사다리를 하나둘씩 복원해 개천에서 다시 용이 나도록 해야 한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