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에는 세 곳의 교도소와 지역별 법원이 있었다. 아마 나만큼 법원을 자주 드나든 사람도 드물 것이다. 재소자 한 명을 제대로 돌보기 위한 첫 사역은 그의 재판 날 방청석에 앉아 그 재판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재판정 한쪽에는 재소자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구금실이 있다. 재소자들은 수인복을 입은 채 이곳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목사가 내 재판을 보러 와 있다”라는 사실 하나가 한 영혼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한 형제의 편지를 통해 배웠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이국땅에서 잘못을 저질러 법정에 섰을 때, 그 앞 어딘가에 자기를 위해 시간을 내어 앉아 기도하는 목사를 본 그는 큰 회개와 소망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 이후 나는 ‘재판 방청’을 사역의 첫걸음으로 삼았다. 하도 법정을 다니다 보니 나를 알아보는 판사들도 생겼다. 한번은 일본계 판사가 한인 재소자의 재판정에서 뒤편에 앉아 있던 내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다. 법정 브로커쯤으로 여긴 듯했다. “목사입니다”라고 답했더니,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점심시간에 법정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내게 그 판사가 다가와 “Pastor Kim(김 목사님)”이라 부르며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내 사역에 대해 묻는 판사에게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판사가 헤어지며 남긴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김 목사님, 귀한 사역을 하십니다. 그런데요, 교도소 안에 있을 때는 다들 예수님을 잘 섬깁니다. 그러나 출소할 때는 예수님을 교도소에 남겨 두고 혼자 나갑니다.” 이 말은 재소자 사역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중요한 교훈이 됐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맞는 말이다. 나는 재소자들을 보며 죄와 사람을 분리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도 나는 열여덟 살 된 한 형제의 결심 공판을 지켜보기 위해 법정 뒤편에 앉아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던 그는 사춘기를 지나며 불행하게도 멕시칸 갱단에 가입했다. 멕시칸 갱단 중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M13’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고, 형이 돕고 있었다. 어느 날, 형의 친구가 가게를 찾아와 누군가를 비방하는 이야기를 했다. 동생인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을 찾아가 총을 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게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죄와 의를 분별하지 못한 청소년의 충동적 영웅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나는 그 재판정에서 뼈아프게 보았다.
피고석 뒤편엔 그의 부모가, 좌측에는 백발의 미국인 노부부가 자리해 있었다. 잠시 후 한 아시아계 젊은 여성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들어와 앉았다. 그녀가 든 피켓에는 한 남성의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것을.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그 아이가 피켓을 높이 들고 울부짖듯 외쳤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