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비교 기준인 미국 달러화로 환산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0.9% 역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저성장 국면에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으로 달러로 계산한 한국의 GDP가 뒷걸음질친 것이다. 원화 약세가 이어진다면 2027년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GDP 2조 달러’ 돌파 시점도 지연이 불가피하다.
30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올해 연례협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미 달러 기준 명목 GDP는 1조8586억 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1조8754억 달러)보다 168억 달러(0.9%) 감소했다. 2023년(1조8448억 달러)과 비교해도 0.7% 늘어나는 데 그친다. 원화 기준 명목 GDP는 지난해 2557조원에서 올해 2611조원으로 2.1%(실질 GDP 0.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달러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오히려 규모가 줄어든 셈이다.
IMF는 보고서에서 환율 기준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올해 1~11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18원으로 지난해 연평균(1364원)보다 54원(4.0%) 높다. 최근 엔 1470원 수준까지 급등한 만큼 연말까지 환율 향방에 따라 달러 환산 GDP는 더 줄어들 수 있다.
달러를 기준으로 한 국가별 지표에서도 원화 약세 여파가 나타난다. IMF는 지난 10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1인당 GDP가 지난해(3만6239달러)보다 0.8% 줄어든 3만5962달러에 그칠 것으로 봤다. 반면 연초 대비 달러 환율이 하락 안정세를 보인 대만은 올해 1인당 GDP가 3만7827달러로 22년 만에 한국을 역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민 한 사람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보여주는 1인당 GNI도 환율에 따라 출렁일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 1인당 GNI는 원화 기준(4956만원)으로 전년 대비 5.7% 늘었지만, 달러 기준(3만6624달러)으로는 1.2% 증가에 그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환율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 실질 소득 하락이 환율 불안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원화 약세의 구조적 배경으로 거론되는 해외 투자 증가세는 국민연금이 개인 투자자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3분기 국민연금 등 일반정부의 해외 주식 투자는 총 245억14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92% 급증했다. 개인 투자자로 분류되는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 주식 투자는 166억25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7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34%)도 개인투자자(23%)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또 지난 27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약 537억4400만 달러로 전월(443억2500만 달러)보다 약 2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차익 실현에 나서는 통상의 흐름과 상반된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