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이른 한파가 찾아온 지난달 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기찻길공원. 50~70대 러너 20여명이 한 줄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빠르게 걸어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느린 속도였다. 이들의 규칙은 ‘욕심내서 빨리 뛰지 않기’. 앞사람과의 간격이 크게 벌어져도 개의치 않는다. 이날 줄 맨 뒤에서 달리던 정해자(72)씨는 “힘들지만 포기는 없다”며 “밖에 나와 이렇게 뛰고 나면 하루가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일산서구보건소는 지난 10월부터 50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슬로 에이징, 슬로 조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매일 오전 모여 1시간씩 발맞춰 뛴다. 말 그대로 걷듯이 가볍게 달리는 슬로 조깅은 심폐와 관절에 부담이 적어 실버 스포츠로도 주목받는다. 보건소 관계자는 “어르신들은 매일 운동하는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처음엔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하는 분도 있었지만 늘 참석률이 높다”고 전했다.
슬로 조깅은 운동은 강하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한다. 오히려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뛰면 된다.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정도면 알맞다. 몇 ㎞를 뛰느냐보다 10분, 20분씩 시간을 점점 늘려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뛰는 게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속도도 붙는다. 이날 기록도 처음보다 1㎞가 늘어났고, 1㎞를 뛰는 데 걸린 시간은 40초나 단축됐다.
뛰기 전 관절 체조는 필수다.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뛰는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 좋다. 착지할 때는 앞꿈치를 먼저 땅에 디디고, 발이 몸의 중심 아래 위치하도록 해야 관절 부담이 적다. 팔은 뒤쪽으로 치듯 흔들고, 배에 힘을 줘 상체를 곧게 세우는 게 중요하다.
이날 줄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묵묵히 달린 윤영미(61)씨는 지난 10년간 디스크로 오른쪽 다리를 잘 쓰지 못했다. 운동도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한 달 새 윤씨는 조금씩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다고 했다. 윤씨는 “밤마다 쥐가 나 많으면 다섯 번씩 깨곤 했는데 다리에 근육이 없어서 그랬다는 걸 이제 알았다”며 “뛰기 시작하고 나서는 쥐가 안 난다”고 말했다.
느리다고 운동 효과도 우습게 봐선 안 된다. 빠짐없이 수업에 나온 조선영(70)씨는 “140까지 오르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활력이 돌고 힘도 길러지니 좋다”고 말했다. 그동안 달리는 걸 엄두도 못 냈다던 이영미(62)씨도 “만보 걷기는 해 봤지만 뛰는 건 또 다르다”며 “이제 자다가 여러 번 깨는 일 없이 숙면한다”며 연신 땀을 닦았다.
처음으로 수업에 참여한 김일권(69)씨는 “정말 오랜만에 뛰어봤다. 조금밖에 안 뛰었는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그동안 자극을 안 주고 편하게만 살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이날 아내 유병례(65)씨와 커플 운동화를 신고 완주했다. 최근 암이 재발했다는 그는 “앞으로도 아내와 오랫동안 함께 뛰어야겠다”고 말했다.
고양=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