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108명 중 딱 절반이라도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몰렸을까 싶다.”(국민의힘 초선 의원)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은 보수 진영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계엄을 어찌 기억할 것이냐를 두고 보수 진영은 현재도 극심한 갈등 속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지난 1년간 계엄 해제 표결, 탄핵 정국, 조기 대선, 전당대회 네 차례 노선 변경을 위한 중대 국면이 있었다. 국민의힘은 일관된 ‘내부 결집’을 택했고, 대부분 실기했다. 계엄 ‘원죄’를 품은 상태에서 내부 배신자를 색출하고 외부와 날을 세우는 노선은 현재로선 한계에 봉착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계엄 해제 표결 불참
지난 1년간 국민의힘 의원 태도나 발언을 종합해보면 윤 전 대통령의 납득할 수 없는 계엄은 당에 사전 공유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한 의원은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국민일보에 “정말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며 “이 정도 사안으로 계엄을 선포해 나라를 마비시켰다는 것이 너무 화도 나고 속상한데, 우리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는 점이 허망하다”고 털어놨다. 이 탓에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도 계엄의 피해자라는 시각이 퍼져나갔다.
계엄 그날 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혹감 속에 사실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일사불란하게 집결한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갈팡질팡했다. 당시 당사에 있었던 4선 의원은 “당사의 의원 모두가 당장 계엄 해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우왕좌왕하다 본회의장 입장을 못했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전횡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108명 중 18명에 불과했다. 진실이 어찌됐든 구성원 상당수가 계엄에 동조했다는 낙인은 1년 내내 국민의힘을 따라다녔다.
30% 지지율, 41% 득표율의 환상
계엄 실패 후 한동안 대통령실도, 국민의힘도 침묵했다. 대체 어찌해야 하는지, 누구 하나 납득할 만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시점 등장한 것이 중진 의원들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겪었던 이들은 “우리는 탄핵 정국을 두 번째 겪는다. 지금 결집해 투쟁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발언했고, 서서히 당내 주류 여론으로 자리 잡았다. 의원 108명 중 경험이 부족한 초·재선이 74명(68%)이나 돼 중진 의견에 따라가기 쉬운 구조였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 윤 전 대통령 체포 집행 반대 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한때 당 지지율이 30%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이는 ‘내란 동조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실책이기도 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지지율 30% 회복은 착시”라며 “계엄이라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배경 속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리한 수사 등에 분노한 보수 지지층이 일시적으로 과표집된 구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느닷없이 강성 보수 진영의 옛 정치인인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선 후보로 떠오른 것 역시 이 같은 과표집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분석도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교체’ 막장극을 겪고도 조기 대선에서 41% 국민 지지를 확보했다. 박 대표는 “그 수치는 ‘김문수 지지’가 아닌 ‘반(反) 이재명 결집’”이라며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사람의 ‘대통령 자격’을 묻는 표의 결집이지, 국민의힘 지지율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30% 지지율, 41% 득표율은 지금도 국민의힘이 강경 일변도 대응을 하는 기반이다. ‘조금만 더 하면’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여전하다.
‘윤 어게인’ 전당대회
계엄 해제 표결에 더 많은 의원이 참여했어야 한다거나, 더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를 선출했어야 했다는 점은 당내에서도 대체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탄핵에 대한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하야 유도 실패 후엔 우리 스스로 탄핵해 정국을 주도했어야 했다”(탄핵 찬성파) “탄핵안을 너무 일찍 가결시킨 게 가장 큰 패착”(탄핵 반대파)으로 극명히 대립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두 차례 보수 진영 대통령 탄핵에 상처받은 당심을 위로하는 전략으로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서 새 대선주자급 정치인을 배출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탄핵 반대를 기치로 ‘윤 어게인’ 세력까지 끌어안은 점은 패착으로 결론 나는 분위기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야당이 됐음에도 국민은 우리를 대안 정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종속관계라는 잔상이 남은 것이 뼈아프다”고 비판했다.
당내에선 계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외면해서는 중도층을 설득할 수도,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수도 없다는 비판이 분출하고 있다. 그러나 장 대표로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장 대표는 지난 28일 대구에서 “민주당의 의회 폭거와 국정 방해가 결국 계엄을 불러왔다”면서도 “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기존 입장보다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반성도 사과도 아닌 어정쩡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한 지도부는 30일 “우리가 무엇을 하든 때리려는 상황에서 무릎 꿇어버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며 “떠밀리듯 사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형민 정우진 이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