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사태’ 등 과거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빌리티 업체의 진출을 강력 반대했던 택시·운수업계가 로보택시(무인 택시)·자율주행차 도입 논의에선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 온도 차가 감지된다. 자발적으로 자율주행 등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규제 완화·도입 방식을 두고 정부와 먼저 협의에 나서기도 한다. 험지 노선에서의 자율주행 활용 등 업계 입장에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여지가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임봉균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은 30일 “완전 자율주행(레벨5)이 되면 핸들 없는 시대가 오는데 이런 세계적 흐름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전택노련은 11월 초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을 초빙해 노조원 150명을 대상으로 자율주행차 교육을 실시했다. 내년에는 자율주행 산업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은행 관계자 강의도 추진하고 있다.
택시·운수 업계에서도 타다 사태 때와는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업계는 올해 열린 자율주행 간담회마다 정부에 선제적으로 배석을 요청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8~2019년 타다 사태 때 ‘(타다에) 면허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만 집중해 반대에 화력을 쏟았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당시엔 업계는 물론이고 노조도 반대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지금은 업계와 노조 모두 정부가 자율주행의 단계적 도입 방침을 밝히면서 수익형 모델 확보나 직업 전환 등 다양한 경로를 토대로 유연한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법인택시 사업자는 대규모 택시차량과 운영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는 만큼 자율주행 전환 시 탄력적인 배치가 쉽다는 입장이다. 특히 접근이 어려운 험지 노선, 운수업자 고령화로 기피되는 장거리·야간·심야 시간대 등에 무인 택시를 투입하면 오히려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개인택시 사업자도 테슬라 사례를 언급하며 ‘자율주행차 사유화’를 통한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택시 면허를 보유한 개인이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차량을 사들여 운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다. 버스업계도 고령 운전기사 증가와 농촌 지역 노선 축소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인 마을버스·공영버스 실증에 지자체를 중심으로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이는 현정부 들어 자율주행차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정부 방침과도 부합한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 말 취임 이후 업계 간담회와 출장 등 관련 일정만 9차례 소화하며 이 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챙기고 있다. 내년도 자율주행 예산안도 연구·개발(R&D)을 포함해 총 608억원이 편성됐다.
다만 관련 노조는 자율주행 도입 시 실직이 불가피한 만큼 직업 전환·재교육, 사회적 비용 지원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12월부터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이해관계자와의 논의를 정례화하고, 자율주행 제도를 연착륙시킬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해관계자들과 만남을 정례화하고 제도를 안정적으로 설계해, 택시·운수업계가 무리 없이 자율주행 체계로 편입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