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옥죄며 온두라스 풀어줘… 마약정책 ‘모순’

입력 2025-11-30 18:2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인 지난 2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전 세계 미군 장병들과 화상 통화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영공을 비행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 감행까지 시사했다. 반면 과거 마약 밀매 혐의로 미국에서 45년형을 선고받은 전직 온두라스 대통령에 대해서는 갑작스럽게 사면을 발표해 마약 단속 정책의 모순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서 “모든 항공사와 조종사, 마약상과 인신매매자들에게 전한다. 부디 베네수엘라의 상공과 주변 영공 전체를 폐쇄된 것으로 간주하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월부터 미국으로의 마약 밀매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할 가능성도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7일 추수감사절에도 전 세계 미군과 화상으로 통화하며 해상뿐 아니라 지상에서도 베네수엘라의 마약 밀매자들을 차단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 연방항공청(FAA)은 ‘악화하는 안보 상황과 군사활동 고조’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영공을 비행하는 항공사에 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게시물은 유엔이 금지한 적대적이고 일방적이며 자의적인 행위”라며 “베네수엘라 영공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식민주의적 위협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주 마두로와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다만 두 정상이 조만간 회동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대체적 분석이다.

트럼프는 지난 28일에는 미국으로의 마약 밀매에 관여한 죄로 미국에서 징역을 살고 있는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에 대해 “완전한 사면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마약 단속을 목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작전을 시사하면서도 마약 범죄로 복역 중인 온두라스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인 2022년 2월 체포돼 그해 4월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된 뒤 기소됐다. 미국 검찰은 에르난데스가 국회의원과 대통령 재임 시절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코카인을 들여와 미국으로 밀수하는 데 관여한 점을 확인했다. 에르난데스는 지난해 6월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4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트럼프의 사면 결정에는 에르난데스가 친미 보수주의자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온두라스 대선에서 우파 후보인 티토 아스푸라 국민당 대표를 지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번 사면 조치는 정부가 마약 밀매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이는 베네수엘라 작전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