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후유증 극복을 위한 총력전을 벌였다. 대통령 1인의 독단적 계엄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속속 도입됐고, 동시다발 특검 수사로 관련자에 대한 처벌이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로 정치적 심판도 이뤄졌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단죄의 규모와 강도를 두고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는 부작용도 겪고 있다.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더 센 청산, 더 강한 방어기제로 충돌하며 갈등 확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내년 내란 재판 선고와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제는 정년연장, 연금개혁, 개헌 등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의제에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계엄이 일으킨 가장 선명한 현상은 정치의 극단화다. 여야 할 것 없이 강성 지지층 구애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반면 중도·합리층은 정치 같지 않은 정치로부터 멀어졌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30일 “계엄 이후 정치가 더 극단화하고 강경파 목소리만 가득할 뿐 온건파는 설 자리가 없다”며 선거제와 정당법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주당은 대의원·권리당원 비례율을 깬 ‘1인 1표제’를, 국민의힘은 당원 선거인단 ‘70% 룰’을 각각 추진 중이다. 당원주권주의를 내세웠지만 여야 모두 불안한 현 지도부 체제의 안착을 위해 강성 지지층 철벽을 쌓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강성 목소리를 통제할 수 없는 길을 택하는 것은 호랑이 등에 스스로 올라타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정치가 과거에 매달릴수록 국민의 삶은 현재에서 멀어진다. 친명계 초선 의원은 “눈이 녹으면 사물이 확 드러나듯 내란 척결에 파묻혀 있지만 그 아래엔 서민경제의 어려움이 심각하다”며 “최소한 내년 3월부터는 경제와 민생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에 대해 변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수도권 한 의원은 “내란 프레임이 억울하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깨고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았다”며 “내부 반성이 아닌 외부 적과의 극단 대결로만 가니 속수무책으로 민주당에 끌려다녔다”고 돌아봤다.
민주당 내부에선 극심한 정쟁에 대한 피로감, 수권 정당으로서 역할을 못 한다는 자성이 함께 나온다. “정치는 현재와 미래를 말해야 하는데 지도부는 지나간 일만 붙잡고 있다”(재선 의원), “힘자랑하는 정치가 지속되면 안된다. 당내 갈등이 한번은 곪아 터져야 한다”(초선 의원), “국민의힘이 계속 극우를 따르면 우리도 내란 청산 의제에 갇힌다. 국민의힘이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5선 의원) 등의 비판이 나온다. 20년 이상 국회에서 근무한 한 보좌관은 “비상계엄 상흔을 넘어설 한국 사회 마지막 퍼즐은 성장과 민생을 앞세운 정상 정치의 복원”이라고 평가했다.
김혜원 한웅희 성윤수 이강민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