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대화, 엑소좀의 비밀 언어

입력 2025-12-02 00:30

세포는 말이 없다. 현미경 아래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엔 놀라운 대화가 오간다. 우리 몸은 수십조개의 세포가 사는 도시다. 그 도시는 매 순간 신호를 주고받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 대화의 언어가 바로 엑소좀이다.

엑소좀은 세포가 내보내는 작은 주머니다. 그 안에는 단백질, 마이크로RNA, 그리고 회복을 돕는 유전자 신호가 들어 있다. 줄기세포가 직접 달려가지 않아도 엑소좀이 대신 그 길을 간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듯, 세포는 엑소좀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2019년 생물학 학술지 ‘네이처 리뷰 몰레큘러 셀 바이올로지(Nature Reviews Molecular Cell Biology)’에서는 엑소좀이 단순한 찌꺼기가 아니라 정보 전달의 핵심이라 밝혔다. 줄기세포가 내보낸 엑소좀이 상처 난 조직에 도착하면 그 안의 마이크로RNA가 손상된 세포의 유전자를 다시 켜서 염증을 진정시키고 회복 단백질 생성을 돕는다. 세포는 그렇게 속삭인다. “괜찮아,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렇다면 엑소좀은 어떻게 우리 몸에 들어오는 걸까? 이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엑소좀은 줄기세포 배양액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치유 메신저다. 줄기세포를 배양하면 세포가 자신이 만든 엑소좀을 주변으로 내보내는데, 그것을 정제·여과한 것이 바로 엑소좀 제제다.

이 엑소좀을 인체에 투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피부 회복 목적이라면 미세침으로 진피층에 주입하고, 관절이나 신경 손상 회복 목적이라면 정맥 주사나 국소 주입으로 사용된다. 줄기세포를 직접 이식하지 않아도, 그 세포가 내보낸 언어만으로 회복 신호를 전달하는 셈이다.

즉 줄기세포가 ‘치료의 본체’라면 엑소좀은 그 손과 입, 그리고 언어다. 줄기세포가 몸속에서 재생의 씨앗을 심는다면 엑소좀은 그 씨앗이 싹틀 수 있도록 환경을 다듬고 신호를 조율한다.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서로 돕는 동반자다.

2022년 의학 학술지 ‘사이언스 트랜스레이셔널 메디신(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의 연구는 줄기세포 엑소좀이 심근경색으로 손상된 심장 세포의 회복을 돕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혈류가 막혀버린 심장 조직에 엑소좀을 주입하자 새로운 혈관이 생기고 세포 사멸이 줄었다. 이후 피부 연골 신경 등 다양한 조직에서도 유사한 회복 반응이 관찰되었다.

물론 엑소좀 치료는 아직 임상 확장 단계에 있다. 미국 FDA와 한국 식약처 모두 엑소좀을 세포 유래 치료물질로 분류하고 철저한 안전성 평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기술은 빠르게 발전 중이다. 최근에는 고순도 엑소좀 제제가 개발되어 줄기세포 치료와 병행할 때 훨씬 안정적인 회복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결국 줄기세포와 엑소좀은 같은 생명의 언어를 쓰는 존재다. 줄기세포가 몸의 재생을 이끌어내고 엑소좀이 그 소통을 넓히며 회복의 신호를 전한다. 그 관계는 마치 스승과 제자 같고 때로는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손길 같다.

우리의 몸은 거대한 공동체다. 세포 하나하나가 서로의 말을 듣고, 손을 내밀고 신호를 건네며 하나의 생명을 이룬다. 이 대화가 끊기면 질병이 시작되고 다시 이어질 때 회복이 일어난다.

그래서 의사들은 말한다. 치료는 기술이 아니라 대화다. 엑소좀은 그 대화의 가장 작은 언어다.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이어주는 신호, 세포들이 주고받는 “괜찮아, 넌 다시 일어날 수 있어”라는 위로의 말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치유하셨다. 세포의 엑소좀도 그분의 언어를 닮았다.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살리는 말, 그것이 생명의 대화이며, 의학의 미래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