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인공지능(AI) 전용 칩 텐서처리장치(TPU)가 부상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묘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TPU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여러 개가 탑재되는데, 양사 모두 “우리가 더 많이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8일 보고서에서 구글향 HBM은 SK하이닉스가 56.6%, 삼성전자가 43.4%의 점유율을 각각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메리츠증권은 SK하이닉스 비중이 60%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해 기준 구글에 공급하는 HBM 물량이 SK하이닉스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고객사 납품 정보라 구체적인 공급량은 공개하지 못하지만, 삼성전자가 구글 TPU 생태계에서 중요한 HBM 공급자라는 점은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비해 ‘후발주자’로 평가되던 삼성전자가 그간 HBM에 대한 언급을 꺼려왔던 모습과 대비된다. 늦게나마 5세대 HBM3E에 대한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성능 평가)를 통과했고, 생산 능력도 궤도에 올라선 만큼 ‘이제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은 우리가 1위’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큰 수요처인 엔비디아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도 가장 많이 HBM을 공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 역시 공급 관련 정보는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절대적인 물량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신경전과는 별개로 TPU 같은 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의 개화는 양사 모두에 호재다. 현재 공급되고 있는 HBM3, HBM3E뿐 아니라 6세대 HBM4에서도 두 회사의 우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쪽에 기울어져 있던 무게추가 균형을 잡으면서 시장에서는 양사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자체가 좋은 신호란 평가도 나온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