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치료 공간 넘어 입양아동-가정 가교 역할해야

입력 2025-12-02 00:07

최근 아동권리보장원이 주관한 행사의‘입양 대상 아동의 의료적 이슈’ 강의를 통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미처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들과 마주하게 됐다. 우리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진료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들은 임신기부터 신생아기, 영유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료적 변수와 불확실성을 지닌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일반적 진료 기준과는 다른 시각이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특히 의료적으로 경미해 보이는 문제조차 입양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강의에서는 적정 시기를 놓치면 국내 입양이 어려워지는 현실과 가벼운 의료 소견만으로도 입양이 좌절되는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이는 의료진의 설명과 판단 하나가 아이 삶의 방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의학은 확률의 과학이며 예후를 단정하기 어려운 소아청소년기 특성상 의료진의 신중한 설명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이를 넘어,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치료를 넘어선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예비입양 부모는 의료 지식의 부족보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저하는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신속한 검사와 신뢰 가능한 정보 제공, 성장 과정에서 호전 가능성이 높은 것과 이미 치료가 완료된 이슈를 명확히 구분해 안내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일반적 선별검사 결과만으로 입양 여부가 결정되는 현실이 아동 최우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 또한 인상 깊었다.

“가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은 의료적 판단을 넘어 아이의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한 아이는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꿈꾸는 미래를 가진 존재다. 병원은 치료의 공간을 넘어, 아이가 사회와 연결되어 가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가교가 될 수 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넘어, 아이 한 명 한 명의 삶의 배경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책임을 다시금 느꼈다. 진료실에서의 관심과 대화, 정확한 진단과 따뜻한 설명은 입양을 앞둔 아동에게 더 넓은 미래를 열어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의료 전문가이자 아동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는 사회적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정성관 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