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지배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 다른 빅테크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민 것은 오래전부터다. 생성형 AI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전력 문제를 해결하고 엔비디아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인데 구글은 TPU 연구에 10년 이상 공을 들였다. 그 결과물이 최근 공개된 ‘제미나이 3.0’의 성공이다. AI 시장의 선두주자인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제미나이 3.0을 접한 뒤 직원들에게 “이제 우리가 따라잡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로 놀랄 만한 결과였다.
제미나이 3.0의 성공은 AI 시장은 물론 AI 반도체 시장의 격변도 예고한다. 구글이 개발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아니라 자체 개발한 TPU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자체 TPU 칩으로 AI 모델의 성능 개선을 이뤄낸 구글은 곧 TPU 외부 판매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메타가 구글 TPU 도입을 검토 중인데 향후 빅테크의 ‘탈(脫) 엔비디아’가 구체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구글은 제미나이 3.0 학습에는 TPU를 사용했으나 GPU의 보급률과 장점을 고려해 서비스를 할 때는 TPU와 GPU 양쪽에서 모두 작동하도록 멀티 플랫폼 전략을 택했다. 아직 GPU 중심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GPU만의 시대는 이미 지나고 있다. 구글의 TPU 외에도 인텔의 가우디, 메타의 MTIA 등도 AI 반도체의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 중이다.
TPU 같은 맞춤형 반도체와 GPU의 경쟁이 서로 시장을 잠식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전체 AI 칩 시장을 확대하게 되면 국내 반도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술력과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엔비디아와 ‘깐부’ 관계를 유지하면서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 입장에선 TPU 같은 맞춤형 반도체의 부상이 그야말로 꽃놀이패인 셈이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