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통합돌봄 성패, 재가 장기요양 혁신에 달렸다

입력 2025-12-01 00:32

가족이 노인 돌봄 한계 이르면
집 대신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삶의 질 저하와 고비용 심화

노인이 평생 살던 집에서
자기다운 삶 유지할 수 있게
사람 중심의 통합돌봄 돼야

한국의 노인 대부분은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제도체계는 이 정당한 욕구를 지지하기보다 오히려 거스르고 있다. 건강 상태가 조금만 악화되거나 복잡한 돌봄 대응이 필요해지면 결국 요양병원 입원이나 요양시설 입소로 ‘밀려가는’ 경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전환 지점을 바꿔내는 것이 통합돌봄의 핵심 과제다.

통합돌봄의 주요 대상은 재가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들이다. 이들은 상태 변화가 잦고 의료적·사회적 대응이 동시에 필요한 집단이지만, 현행 체계는 이를 받쳐줄 서비스 공백과 더불어 유연성과 조정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야간대응, 수시대응, 단기보호, 재택의료, 퇴원 후 회복재활, 치매 문제행동 대응, 생애말기 돌봄 같은 필수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아 부담은 가족에게 전가되고, 가족이 한계에 이르면 입원·입소로 이어진다. 결국 통합 대응 부재가 입원·입소로 이어지는 경로의존을 고착하고 있으며, 이는 삶의 질 저하와 고비용 돌봄구조 심화를 초래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근저에는 재가 장기요양 내에 사람 중심 통합돌봄을 설계·조정할 케어매니지먼트 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이 있다. 일차 케어매니지먼트는 노인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재가 장기요양기관이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나 현재의 기관 구조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선 전속 인력 부재로 인해 요양보호사 배치권이 취약하다. 비전속 인력 구조에서는 하루 다회 방문, 장시간 집중지원, 2인 방문, 위기 대응 등 유연한 배치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단종서비스 중심 공급구조가 개인별 맞춤형 복합서비스를 조정하는 데 제약을 만든다. 서비스가 기관 단위로 분절된 상태에서는 연속성·조정성·맞춤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끝으로 재가 의료·간호·재활 등 보건의료적 돌봄의 공백이 크다. 악화 예방과 퇴원 직후 회복재활기, 치매 문제행동 악화기, 와상 전환기, 생애말기 등 고위험 시기에 필수적인 보건의료서비스의 연속적 개입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기관의 전문성·책임성·공공성이 부족해 책임 있는 케어매니지먼트를 수행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한다. 재가 장기요양기관이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춘 케어매니지먼트 주체로 전환되지 않는 한 사람 중심 통합돌봄은 작동할 수 없다.

해결의 첫 단계는 재가 장기요양기관을 복합재가서비스 기관으로 표준화하는 것이다. 단종기관 중심 구조로는 통합돌봄이 구현될 수 없다. 복합재가기관은 방문요양·주야간보호·단기보호· 방문간호 등을 한 기관 안에서 통합 제공해 상태 변화에 따른 맞춤형 복합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다. 신규·재지정 시 복합재가기관 기준을 적용하고, 사례관리를 수행하는 기관에는 케어매니지먼트 수가를 차등 지원해 공급체계를 규모화·전문화·책임성 기반으로 재편해야 한다.

두 번째는 급여체계의 전면적 혁신이다. 복합재가기관에는 월정액 급여를 적용해 기관이 책임 있게 서비스 조정과 사례관리를 수행하도록 하고, 재택의료 간호센터에도 별도 월정액 급여를 구조화해야 한다. 또한 기본 급여로 감당하기 어려운 집중돌봄이 필요할 경우 시군구 통합돌봄을 통해 추가 자원을 배분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는 케어매니지먼트의 다층적 구조화다. 건강보험공단은 통합판정과 공식 케어매니지먼트를 통해 등급별·상황별로 일상생활 지원과 보건의료 급여를 구조적으로 할당한다. 재가 장기요양기관은 1차 케어매니지먼트 주체로서 일상적 관리와 유연한 서비스 조정을 담당하고, 의료적 대응은 재택의료 간호센터가 방문진료·간호·재활·구강·약제·영양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수행한다. 또한 고난도 집중돌봄은 시군구 통합돌봄 케어매니지먼트가 추가 자원을 동원해 지원한다. 이처럼 재가기관 보건의료체계 지자체로 이어지는 다층적 조정체계가 구축되어야 비로소 사람 중심 통합돌봄의 핵심 가치인 연속성·조정성·맞춤성이 구현될 수 있다.

통합돌봄의 목적은 노인이 살던 곳에서 자기다운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혁신되어야 하는 영역은 바로 재가 장기요양이다. 재가 장기요양이 ‘사람 중심 통합돌봄’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통합돌봄은 제도적 포장을 넘어 실제 삶의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통합돌봄의 성패는 결국 재가 장기요양 혁신에 달려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