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탈석탄동맹 덜컥 가입
중·일은 미뤘는데 쉽게 결단
이념보다 실리 먼저 챙겨야
중·일은 미뤘는데 쉽게 결단
이념보다 실리 먼저 챙겨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그림이 선명해졌다. 바로 전 세계가 한국처럼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와 산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전환한 나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모두가 에너지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이익이 공유되는 나라, 기후위기로부터 미래세대의 삶을 지켜주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 이재명정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한번 해보겠다.”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다녀온 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이런 짧은 소감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기후위기의 출구를 찾기 위한 국제 행사를 다녀온 직후 주무장관으로서 나름의 포부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김 장관의 이런 포부가 염려되는 건 정작 COP30에서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은커녕 화석연료 사용 감축에 대한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 관련 국제사회의 합의 불발은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 등 산유국들 입김과 탄소 배출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 탓이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미·중 패권경쟁과 세계 각국의 자국 우선주의 확산을 고려하면 합의 불발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 자리에서 한국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53~61% 줄이겠다는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천명하고 석탄화력발전의 전면 중단을 목표로 하는 ‘탈석탄동맹(PPCA)’에도 덜컥 가입했다.
포부가 큰 건 좋지만 그 포부를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국내만 놓고 보면 정부가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지를 국정과제로 제시했으니 PPCA 가입이 예정된 수순이었겠지만 주변국 동향이나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섣부른 감이 없지 않다.
해마다 현실로 나타나는 기후위기를 줄이려면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는 건 불가피하지만 전체 발전량의 28.1%에 달하는 석탄화력을 2040년까지 완전히 폐지하고 재생에너지 등으로 대체하는 게 실현 가능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안 그래도 한국은 산지가 많아 일조량이 적고 풍속이 느린 편이라 유럽·미국 등에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에 불리한 여건이다. 동시에 전력 소비가 많은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 발전을 이뤘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삼았으니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도 불가피하다. 전력 수요가 늘면 늘지 결코 줄어들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의존도가 높거나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높은 중국·일본은 자국 산업 경쟁력 등을 이유로 PPCA 가입을 미루고 있다. 반면 우리는 과거 탈원전에 이어 탈석탄까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에너지 문제를 너무 쉽고 통 크게 결단 내리는 듯하다. 그 ‘쿨함’이 일견 걱정스럽다.
NDC 역시 과속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이 올해 초 정부에 전달한 ‘주요 다배출 업종별 탄소중립 추진현황 및 애로사항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 탄소 다배출 업종에서 수소환원제철이나 나프타 분해 전기화 기술 등 탄소를 줄이는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상용화까지는 최소 5~10년은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철강·석유화학 등의 업황 악화 상황에서 NDC의 상향 조정은 그만큼 기업의 설비투자나 배출권 구매 등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1.6~1.7% 수준이다. 한국이 목표한 탄소 감축에 성공한들 중국 미국 인도 같은 다배출 국가들이 꿈쩍 않는 한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다. 탄소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더라도 제조업 경쟁력을 잃는다면 다른 나라들이 외면하는 지구적 과제에 동참했다는 도덕적 우월감 외에 우리에게 어떤 실익이 있을까. 포부는 크게 갖더라도 국가적 명운이 달린 문제에서만큼은 이념보다 실리를 먼저 챙기는 게 실용주의 정부 아닌가.
이종선 산업1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