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을 초래한 의대 정원 ‘2000명 일괄 증원’ 계획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말 몇 마디와 불분명한 추계 탓으로 부정확하게 산출됐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27일 나왔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연간 500명 증원’ 계획을 세웠으나 윤 전 대통령 지시 등으로 2000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2023~2024년 진행된 의대정원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2023년 6월 복지부는 2025~2030년 연간 500명씩 총 3000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는 내용의 ‘필수의료 강화대책’을 보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그 정도로는 불충분하고 (연) 1000명 이상은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반대했다. 이에 조규홍 전 복지부 장관은 같은 해 10월 2025~2027년 1000명, 2028년 1942명 증원안을 보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또 “필요한 만큼 충분히 더 늘려라. 지금 의사가 부족해 난리다”라고 답한 것으로 파악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복지부와 대통령비서실이 증원 규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2000명이란 숫자를 먼저 꺼낸 것은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정책실장이었다. 그는 같은 해 12월 조 전 장관에게 “단계적 증원은 정원이 늘 때마다 의사단체의 반발이 생기니 첫해부터 2000명을 증원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복지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두 가지 안을 보고했다. 제1안은 2025~2026년 900명, 2027~2029년 2000명 증원으로 5년간 7800명을 신규 확충하는 방안이었다. 제2안은 2025~2029년 2000명씩 일괄 증원으로 1만명을 확충하는 내용이었다.
조 전 장관은 “2안은 의료계 전반의 반발이 예상된다”며 1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윤 전 대통령은 그러나 “증원 규모와 관계없이 어차피 의사단체 반발은 있을 것이고, 2027년 증원 규모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의료계 반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또다시 초래될 것”이라며 사실상 1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안을 놓고 “의료계의 반발을 줄일 대안을 살펴보라”며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이듬해 2월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에 2000명 일괄 증원안이 상정돼 정부안으로 발표됐다.
감사원은 복지부가 부족한 의사 규모를 산출한 과정도 “추계의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추계한 의사 인력 부족 규모 1만5000여명은 현재 의사 수요·공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가정하에 진행된 3개 기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1만여명과 연구자 A씨가 추산한 현재 시점에 부족한 의사 수 4786명을 더한 것이었다.
그러나 감사원은 A씨 연구가 전국의 부족한 의사 숫자를 계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A씨는 전국을 70개 권역으로 나눠 31개 의료 취약지에서 전국 평균 수준의 의사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의사 수를 도출했다. 감사원은 “이 연구는 지역 간 의사수급 불균형을 나타낸 것이지 전국의 총 부족 의사 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각 대학이 의대 정원을 배정받는 과정에서 교육여건을 확인하기 위한 현장점검이 없었던 점도 문제였다. 교육부는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 위원들이 대학의 학생 수용역량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지부는 “감사 결과를 향후 업무에 적극 반영하겠다”며 “감사원에서 통보한 분석 결과는 의료인력 수급 관련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들에 대한 분명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미 벌어진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슬 김영선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