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각각 1.0%와 1.8%로 높였다. 대미 관세협상 타결이 호재로 작용하고, 반도체산업 호황과 국내 소비심리 회복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기준금리는 4연속 동결해 연 2.5%로 해를 마무리하게 됐다. 통화정책방향에서는 ‘인하 기조’라는 표현을 ‘인하 가능성’으로 바꿔 금리 인하 종료를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27일 발표한 올해 마지막 경제전망에서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1.0%로 전망했다. 8월 전망(0.9%)보다 0.1% 포인트 높다. 내년 전망도 1.6%에서 1.8%로 0.2% 포인트 올렸다. 내년도 수정 전망치는 정부·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과 같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2%)나 한국금융연구원(2.1%)보다는 소폭 낮다.
상향 조정 배경은 지난달 대미 관세협상 타결에 따른 불확실성 축소와 반도체 강세 지속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 미 무역협상 타결과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조 등으로 수출과 설비투자 증가세가 당초 예상을 상회할 것으로 봤다”면서 “소비 측면에서도 확장적 재정정책과 경제심리 개선의 영향이 커지면서 회복세가 조금 더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보기술(IT)에 집중된 성장세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은에 따르면 반도체 등 IT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4%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1.4%를 좋은 성장, 충분한 성장세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내년 회복이 완연한 경기 회복이라고는 전혀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공개된 2027년 성장률 전망치는 1.9%로 내년 전망치보다 0.1% 포인트 높다. 물가상승률은 고환율과 내수 부진 완화 등을 고려해 올해와 내년 전망치를 나란히 2.1%로 소폭 높여 잡았다.
금리는 이번에도 고환율과 서울 집값이라는 양대 리스크를 넘지 못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로 유지했다. 지난 5월(2.75%→2.5%) 인하 후 4회 연속 동결이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조만간 막을 내릴 수 있다는 매파적 신호도 등장했다. 금통위는 이번 의결문에서 ‘금리 인하 기조’를 ‘금리 인하 가능성’으로, ‘추가 인하 시기 및 속도’를 ‘추가 인하 여부 및 시기’로 각각 대체했다. 향후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금통위원도 지난 8월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이 총재는 “당분간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과 동결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번 외신 인터뷰에서 불거진 ‘인상 기조 전환’에 대해서는 “현시점은 인상을 논의할 단계는 아닌 듯하다”면서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고환율의 주된 원인으로 내국인의 해외투자를 거듭 지목했다. 그는 “(고환율이) 한·미 금리 차도 아니고 외국인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해외주식을 많이 하는 것 때문”이라면서 “젊은 분들이 ‘쿨하다’며 해외투자를 많이 해서 유행처럼 커지는데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걱정”이라고 강조했다.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한다는 지적에는 “중장기적으로 국민의 노후자산을 보호하는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향후 국민연금 지급이 늘어나 해외자산을 매각해야 할 때 환율이 하락해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재 김진욱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