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65명이 숨지고 279명이 실종됐다. 보수 공사를 위해 외벽에 설치한 대나무 비계와 스티로폼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2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52분쯤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의 32층짜리 아파트 단지인 ‘웡 푹 코트’에서 큰불이 났다. 불이 난 건물 7개 동 중에서 4개 동은 거의 10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3개 동에선 24시간이 지나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홍콩 소방 당국은 27일 오후 3시 현재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소방관 1명을 포함해 65명으로 집계됐고 72명이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부상자 대부분이 위중한 상태인 데다 실종된 279명이 건물 내에 갇힌 것으로 추정돼 인명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곳 단지에는 1984가구, 약 4800명이 거주하는데 주민의 36% 이상이 노인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당국은 전날 오후 6시22분쯤 최고 등급인 5급으로 경보 단계를 격상했다. 5급 경보는 4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다친 2008년 몽콕 나이트클럽 화재 이후 처음이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은 지은 지 42년 된 노후 건물로 지난해 7월부터 대규모 보수 공사 중이었다. 불길이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와 스티로폼 등을 타고 번지면서 대형 불기둥이 치솟았다. 홍콩 특유의 밀집형 고층 건물인 데다 주거비용이 비싼 홍콩에선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사는 경우가 많아 인명 피해를 더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 현장에는 소방차 128대와 앰뷸런스 57대가 출동했지만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AP통신은 홍콩 정부가 대나무 비계의 안전 문제를 우려해 공공 프로젝트에서 단계적 사용 금지를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당국은 관광버스를 투입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인근 학교 건물 등을 임시 대피소로 개방해 약 900명을 수용했다. 단지가 위치한 타이포 구역은 중국 본토에 인접한 교외 주거 지역으로 약 30만명이 거주한다. 주민들은 현지 언론에 화재경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한밤중이었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홍콩 경찰은 공사업체 임원 2명과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1명을 중과실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이들이 공사 현장에서 가연성 물질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1948년 홍콩에서 위험물을 보관하고 있던 5층 창고에서 폭발이 발생해 176명이 숨진 사건 이후 77년 만에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숨진 소방관과 희생자 가족에게 위로를 표하면서 피해 최소화를 지시했다고 관영 CCTV가 보도했다.
홍콩 당국은 현재 수리 중인 모든 주택 단지에 대해 비계와 건축 자재의 안전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다음 달 7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 관련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선거 연기를 검토 중이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