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석기 (19) 곧 돌아갈 조국, 살아갈 걱정에 결국 죽음 선택한 형제

입력 2025-12-01 03:06
갈릴리 선교교회가 CYA(California Youth Authority·청소년과 성인 교도소 중간 단계 수감시설)와 협력해 진행한 청소년 범죄예방을 위한 심포지엄(2013년) 모습.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려 살인자가 돼 오랜 형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갑니다. 목사님, 그런데 한국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 친척이 있습니까?” “누님 한 분이 계십니다.”

야윈 몸을 가진 그는 오랜 수감생활 탓인지 사회로 돌아가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날 함께 예배드리고, 한국에 가서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 달라며 기도로 힘을 북돋아 주었다.

한 주가 지나 이민세관단속국(ICE) 교도소에 갔지만 그 형제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형제에게 물으니 며칠 전부터 안 보였다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는데 어둑한 뒤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목사님! 목사님!”

뒤돌아보니 독방(Segregation)에서 부르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그 앞으로 갔지만, 들여다볼 창이나 구멍도 없었다. 감방문 아래 3cm 남짓한 틈만이 유일한 대화의 통로였다. 그 틈으로 형제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사님, 저 며칠 있으면 한국으로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가슴이 울컥했다.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렸다. 감방문 아래 햇빛이 실오라기처럼 스며드는 틈에 입술을 갖다 대기 위해 몸을 더 낮췄다. 문 넘어 형제도 엎드렸다. 우리는 그 작은 틈으로 손가락 하나를 밀어 손을 맞잡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주께서 이 형제를 지켜 주옵소서. 한국에 나가 주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고 힘과 지혜를 주소서.”

그리고 여호수아의 말씀을 함께 외웠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수 1:9)

그날처럼 온 힘을 다해 크게 부르짖어 기도한 적은 드물었다. 그가 독방에 갇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었을 거로 생각했다. 내 마음은 슬픔으로 무거웠지만, 동시에 기도 속에 주시는 힘이 있어 담대히 작별하고 돌아왔다.

이틀 뒤, 이민세관단속국 채플린(Chaplain)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죽었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고향에 돌아간다”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던 그가 죽다니.

“어떻게 죽었습니까?” “자살입니다.”

눈물이 났다. 꿈을 안고 미국에 왔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부초 같은 인생의 외로움, 돌아갈 고향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을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나 같은 죄인, 조국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영사관 요청으로 병원에 갔다. 미약한 숨이 붙어 있었기에 교도 당국은 아직 사망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숨진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어 예수님을 전하며 아멘을 외쳤다. “주님, 이 영혼을 당신의 품에 거두어 주옵소서. 비록 세상은 그를 인정하지 않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영혼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는 귀한 영혼입니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