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님, 사무실에 소화기 있나요?”
지난 25일 경기도 수원제일교회(김근영 목사) 7층 복도. 강점석(70) 장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전도사는 “있긴 한데, 어디 있었더라…”며 교역자실을 두리번거렸다. 교회 관리부장인 강 장로와 이영섭(59) 관리장 손에는 ‘겨울철 화재 안전사고 예방 특별점검’이라고 적힌 종이 뭉치가 들려있었다. 이들은 표에 적힌 수칙을 꼼꼼히 살폈다.
점검 수칙에는 ‘실(室) 당 소화기 비치하기’ ‘소화전 주위 인화 물질 놓지 않기’ ‘다 쓴 건전지, 실내 보관하지 않기’ 등 구체적인 수칙이 빼곡했다. 이날 교회는 동절기를 맞아 화재 예방을 위한 특별점검에 나섰다.
기자는 이들과 2시간여를 함께 점검했다. 교회 내부의 비상구 상태와 소화기 비치, 방화문 작동, 가스 설비를 포함해 교회 특성에 맞춘 10여개 항목을 확인했다. 건물 구석구석을 살피자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드러났다. 사람 발길이 뜸한 복도 끝 소화전 앞은 물건들이 가로막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불량 콘센트가 발견됐다.
이 관리장은 “교회는 지하부터 주방, 방송실까지 공간 특성이 다양해 위험 지점도 제각각”이라며 “지하층은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를, 주방은 가스 누출과 콘센트 상태를 확인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관리팀은 지난 3월 당회에서 가결한 ‘화재 및 안전 예방 매뉴얼’을 따라 움직였다. 매뉴얼에 따라 교회는 목양실부터 경비실까지 57개 공간에 2~3명의 ‘방범 및 화재 안전 관리책임자’를 세웠다. 매뉴얼은 소방기본법과 소방시설에 관한 법률을 참고해 정리했다.
관리팀은 매년 2월과 11월 두 차례 정기 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당회에 보고한다. 11월 1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는 ‘화재 및 안전사고 예방 강조 기간’으로 지정했다.
강 장로는 “목회자가 교인의 영성을 높이는 사역에 힘쓴다면, 관리팀은 그 영성이 유지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교회가 화재에 경각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 1월 1일 0시, 교회 지하 온수 탱크와 기관실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방치된 폐건전지가 원인이었다. 기관실 내 열기로 인해 건전지에 불이 붙은 것이다. 다행히 발화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화전이 있었고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교인들의 신속한 대처로 곧바로 진화에 성공해 대형 화재를 막을 수 있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종교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는 연평균 370여건이다. 난방기구와 전열기 사용이 급증하는 겨울철에 전체 화재의 30% 이상이 집중된다.
지난달 31일에도 전남 무안의 한 교회 노후된 주방 콘센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연기와 불꽃을 발견한 교인이 119신고 후 소화기로 불길을 잡았다. 무안소방서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 초기 1분 대응이 피해 규모를 좌우한다”고 전했다.
화재가 빈번하다보니 자체 점검을 넘어서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삼일교회(송태근 목사)는 매월 1회 전문 소방 업체에 위탁해 정밀 점검을 실시한다. 교회 관리팀이 유도등 점멸, 소화기 상태 확인 등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을 맡는다. 외부 업체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화기 가스 압력과 감지기 오작동 여부 등을 점검한다.
인력이나 재정 등 현실적 여건으로 모든 교회가 전문 업체를 통해 관리받기는 쉽지 않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총회장 정훈 목사)는 2019년 교단 차원에서 ‘교회안전관리지침’을 총회 정책문서로 채택했다. 예장통합 총회는 지금도 이 지침을 바탕으로 교회 내 안전 교육과 재난 예방을 안내하고 있다.
통합 총회의 지침 연구책임자였던 신영균 목사는 2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교회는 다중밀집시설이며 영아부터 고령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다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면서 “철저한 관리를 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개별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노회나 교단이 함께 점검하고 겨울철에는 특별점검 기간을 두는 등의 방법으로 안전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원=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