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벨트를 중심으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이 지속되자 정부는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과열이 일부 진정됐지만, 수도권 공급 부족론과 부동산 불패 기대심리가 여전해 시장의 긴장감이 지속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인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를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나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 이사는 10·15 대책의 집값 안정 효과가 내년 봄쯤부터 가시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저서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에서 부동산시장을 금리와 환율, 인플레이션, 채권, 암호화폐 시장 등 다양한 지표들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배 이사는 지난 10년간 2번의 부동산 하락기가 각각 금리인하와 정부 지원으로 약 6개월에 그쳐 ‘부동산 불패심리’가 강고해진 점을 지적했다. 그는 “최소 1~2년간 정책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섣불리 규제를 완화하거나 금리를 인하하면 불패심리가 더 강해진다는 우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재명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해 어떻게 보나.
“6·27 대책 자체는 핵심을 잘 짚었다. 부동산 급등에는 대출을 너무 쉽게 내주는 문제도 있었다. 10·15 대책 역시 대출한도를 크게 축소하고 갭투자를 막는 강력한 수요억제책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시장이 상승에 젖어있다 보니 ‘대출에 의한 수요억제책은 길어야 반년’이라는 여론몰이가 있다.
한국은행은 이를 ‘진단적 기대’로 표현하며 금리인하 시 아파트 가격만 오르고 소비·투자·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난다고 분석했다. 진단적 기대란 경제주체들이 과거 기억을 선택적으로 회상해 경제여건 변화와 무관하게 미래에도 주택가격 상승세가 지속될 거라 편향되게 기대하는 현상이다.
어떤 정책도 효과를 보려면 시차가 존재한다. 가계의 ‘서울 아파트 불패’라는 진단적 기대가 강한 상황에서는 이 시차가 길다. 내년 봄부터, 늦더라도 여름부터는 서서히 수요 약화 효과가 가시화할 것이라 본다. 채권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국채금리를 중요하게 보는데, 최근 금리도 많이 올랐다. 강한 수요억제책과 금리가 결합하면 내년부터는 과열이 진정되는 타이밍이 올 수 있다.”
-시장의 예상과는 다른 것 같다.
“조건이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가계대출 한도나 금리를 완화하거나, 앞으로 세제개편이 없다는 식의 시그널을 주면 ‘정부는 결국 집값을 내릴 생각이 없다’는 불패 심리가 지속돼 정책 효과가 퇴색될 것이다.
누구나 두 번 같은 일을 겪으면 패턴으로 인지한다. 2018년 하반기와 2022년 하반기에 집값이 하락 국면에 들어갔지만 약 6개월에 불과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1기 당시 중국과 무역갈등으로 세계 경기가 악화하면서 한국 기준금리도 일부 하락했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역대 최저수준의 금리인하가 있었다. 2022년 하반기도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하락기를 맞았지만, 2023년 ‘둔촌 주공 살리기’ 등 정책자금을 풀어 막은 경험도 있다. 10년 중 하락기가 2번 있었지만 6개월에 불과했고, 하락은 단기간에 그치고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는 심리가 단단해졌다.
높은 금리와 대출규제로 부동산 가격은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주식·금·가상화폐 등 여타자산이 수시로 오르는 상황이 지속되면 시장 참여자들의 부동산 불패심리도 바뀔 수 있다. 집값 안정을 위해선 부동산의 상대성과가 부진한 기간이 최소 1년은 필요하고, 2년이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정부가 집값 하락 시 예상되는 각종 불만 여론을 얼마나 오래 인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미국에선 금리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고환율 리스크로 미국이 12월에 금리 인하를 해도 한국이 따라서 내리긴 어렵다. 한국이 금리를 더 내리면 환율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올해 10월부터 채권시장에선 내년 말까지 금리인하가 없을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중 기술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반도체, 전력 등 한국 제조업이 수혜를 보고 있고 대미투자를 강요받다 보니 환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역시 장기화할 수 있다. 금리가 쉽게 내려가기는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서울 신축 공급’을 유일한 답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안정적인 신축 공급은 가계 효용과 주거복지를 위해 중요한 일이지만 가격에 미치는 효과는 별개다. 아파트는 ‘필수재’와 ‘투자상품’ 성격을 모두 갖는 하이브리드 상품이다. 필수재 성격만 강조하면 수요억제책은 큰 비난을 받고, 오직 공급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투자상품은 금리와 대출 한도에 민감하다. 서울 아파트의 가격과 거래량도 공급(입주물량)보다는 금리와 정부 정책에 훨씬 영향받았다. 과거 데이터를 보면 서울 아파트는 입주물량과 가격 간 상관관계가 없다시피 했다. 서울 아파트 공급이 5% 늘어도 유동성이 10% 늘어난다면 가격은 오르고, 공급이 없어도 유동성이 10% 감소한다면 가격은 조정된다.”
-부동산시장에 쏠린 자산을 주식시장으로 분산하는 게 가능하려면.
“선진국과 비교해 실질 보유세가 낮긴 하다. 일본만 봐도 약 1% 정도다. 40억원 집을 사면 연 4000만원을 부담해야 하니 한국보다 훨씬 많다. 세제와 관련해선 대부분 선진국처럼 보유세 부담을 주택 수와 상관없이 보유주택 가격에 연동되게 부과하거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축소한다면 ‘똘똘한 한 채’ 집중 완화를 기대해 볼 만하다. 장기보유주식 배당소득 과세특례 등은 부동산 투자 대비 배당주 투자 매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