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서울 자가에 살며 사역하는 김 목사?

입력 2025-11-29 03:08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김부장의 아내 박하진(명세빈 분)이 명예퇴직 후 돌아온 남편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격려하고 있다. JTBC 드라마 화면 캡처

요즘 사모들을 만나면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대화에 빠지지 않는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은 서울 한복판의 자가 아파트, 25년 차 대기업 직장 경력에 명문대생 자녀까지 둔, 겉보기엔 누구보다 안정되고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은 중년의 불안과 퇴직 이후의 삶을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 이야기로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사모가 “나도 드라마 속 김 부장 아내 못지않게 내조 열심히 하며 살아왔는데, 우리 집 김 목사는 늘 무주택자”라고 말해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또 다른 부목사 사모가 “모아둔 돈이 없어 자가는 꿈도 못 꾸니 사택이라도 있으면 감사하겠다”라고 맞장구치며 사모들만의 짠 내 나는 대화가 오갔다.

목회자의 길이 세상의 화려함이나 부유함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구나 요즘처럼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시대에 ‘서울 자가에 살며 사역하는 김 목사’는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자가는커녕 수도권에 전셋집 하나 마련하는 일조차 힘들다. 팍팍한 사례비로 높아진 월세를 감당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것이 가정 살림을 책임지는 사모들의 고민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사택을 제공하는 교회를 찾기 쉽지 않다. 교회마다 사택을 마련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동일한 평수의 아파트를 제공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일부 보증금이나 월세만 지원하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는 사택 지원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상황에서 현행 세법상 부교역자 사택이 교회의 고유 목적 사용으로 인정되지 않아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어려운 점도 사택 감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출 문턱도 높다. 목회자는 소득이 낮은 데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다 보니 금융권 ‘기피 1순위 고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설사 대출을 받는다 쳐도 대출만으로도 계속 오르는 수도권 집값을 감당하기에는 버겁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최근 수도권으로 부임한 한 사모는 교회에서 지원받은 보증금만으론 도무지 집을 구할 수 없어 결국 이사를 포기했다. 어쩔 수 없이 경기도 외곽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택한 목회자도 있다. 새벽기도를 위해 매일 새벽 3시, 무거운 몸을 일으켜 길을 나서는 고단한 일상이다. 부디 이들이 주거 걱정 없이 오롯이 복음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부교역자 이동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새로운 자리로 나아가는 목회자들의 걸음에는 설렘과 함께 삶의 무게도 얹혀 있다. 그러나 그 무게마저 사명이라 믿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현실의 짐에 흔들리지 않기를, 섬기는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끝까지 힘 있게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비록 우리에게 ‘서울 자가’는 없어도 그보다 더 든든한 ‘하늘 집’이 예비돼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 속 김 부장으로 대변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무게도 다르지 않다. 오랜 세월 버텨온 중년 세대의 불안과 책임, 가장으로서의 부담, 퇴직 이후의 막막함까지. 신앙인으로 또 가장으로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스며있는 듯하다.

성공의 이면, 김 부장의 처연함을 보며 그를 응원하듯 현실 속의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우리 곁의 이웃들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 눈길 한 번 건네보면 어떨까.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성공이 아니라 서로가 내어주는 마음의 곁일 테니 말이다. 연말만큼은 서로를 향한 응원을 넉넉히 주고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