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트럼프와 성룡

입력 2025-11-28 00:40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베니토 무솔리니는 영화를 집권과 개인 숭배에 활용한 최초의 국가 지도자들이다. 영화의 오락적 요소들을 통해 여론을 돌리고, 잠재우는 데 능수능란했다. 무솔리니는 스스로 이탈리아 최고 배우라 여기고 저녁마다 특정한 몸짓과 자세를 연구했다.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게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다. 김정일은 1970년대 직접 ‘영화예술론’을 집필하고 영화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의 제작에도 관여했다. 급기야 당대 남한 최고 감독이자 스타인 신상옥·최은희 부부를 홍콩서 납치해 영화 제작을 맡겼다. 북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욕심, 자기 만족, 우상화 활용이 낳은 광기였다.

메시지 전달 수단이 넘쳐나 집권자의 영화 사랑이 예전만 못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1998년에 시작돼 3편(2007년)까지 개봉된 홍콩 스타 청룽(성룡) 주연의 미국 영화 ‘러시아워’가 약 20년 만에 속편을 선보인다는 소식이다. 배경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고 해 화제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절친이자 거액 후원자인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에게 속편 제작을 요청했다. 엘리슨은 영화제작사 파라마운트 CEO 데이비드 엘리슨의 아버지다.

액션 영화 팬인 트럼프는 러시아워를 가장 좋아하는 ‘버디(단짝) 무비’로 꼽고 있다. 영화 관계자들과의 친분도 작용한 듯하다. 주연 성룡과 크리스 터커는 다른 할리우드 스타들과 달리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다. 감독 브렛 래트너는 올해 멜라니아 여사의 삶을 다룬 4000만 달러(약 590억원)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제작자 아서 사키시안은 트럼프 찬양 다큐(‘당신이 모르는 남자’)의 제작사 대표다. 충성파의 칭송에 취하고 고전적 남성성을 부활하고픈 트럼프의 바람에 러시아워가 제격이었던 셈이다. 한국 팬도 많은 71세 성룡은 트럼프에 의해서 뜻하지 않은 액션 영화에 강제 등판할 판이다. 고령자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게 낙상 사고라는데 그의 팬들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