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공고에 다녔다. 외국 동전을 드릴로 뚫어 반지로 만들어 선물을 주던 아이였다. 그는 지금 부천 산업단지의 한 화학 공장에 다닌다. 이제는 과장이라는 직함까지 달았다. 주로 휴대전화 액정 필름의 원료나 접착제를 가공하는 회사라고 했다. 웃음 많고, 누구에게나 무람없이 까불던 동생은 어느새 말수가 많이 줄었다. 잔업을 포함하면 근로 시간은 12시간. 하루의 반을 노동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셈이다. 한 번은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장이 청소하다가 에어호스가 모터에 빨려 들어갔는데, 그걸 잡아 빼려다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엊그제 정우신 시인의 시집 ‘미래는 미장 또는 미장센’(2025, 아침달)을 펼쳐 읽다가 그 순간이 함께 떠올랐다.
“집으로 향하는 언덕/ 월급을 전부 잃어버린 적 있지”.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언덕이 동생이 퇴근해 올라갈 언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동생에게 진지하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때는 진심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었으나, 지금은 얼마나 얄팍한 동정과 무책임한 낙관을 버무린 말이었는지 알기에 부끄럽다.
“쇠를 깎으며/ 딸려 나간 살점처럼/ 물컹한 과일을 주우며// 여름을 보낸 적 있지”. 공장에서 금속을 깎아내는 일과 손에 쥔 과일의 물컹한 촉감을 한데 포개는 이 구절은, 몸이 훼손되는 감각을 선연히 불러낸다.
“검은 봉지엔 치킨이나 도넛이 아닌/ 손가락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 이 문장이 어떤 이에게는 수없이 반복된 산업재해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 속의 ‘검은 봉지’는 비유가 아니라 엄정한 현실이다. 정우신의 시를 읽다 보면 늑골 아래 아주 약한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 떨림이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동생의 얼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앳된 얼굴들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