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 함마르셸드(1905~1961).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은 아닐지라도 세계 정치 외교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제2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국제 평화에 헌신한 그는 1961년 비행기 추락사로 순직한 뒤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제7대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그를 ‘유엔 사무총장직의 기대와 기준을 세운 인물’로 평가했다. 오늘날 뉴욕 맨해튼 유엔 본부 인근 공원과 건물, 스웨덴 1000크로나 지폐엔 그의 이름과 얼굴이 남아있다.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견된 일기를 엮은 것이다. 1925년 20대 청년 시절부터 1961년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 기록은 국제 정치가로서의 공적인 삶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처절할 만큼 진솔하게 담아낸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평화와 화해를 위해 헌신한 삶 이면에는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세속 성자’의 고백이 자리한다.
1960년 부활절에 써 내려간 그의 문장에는 국제적 혼돈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성찰과 인간적인 근심이 동시에 드러난다. “용서에는 희생이 따른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해방되었다면 그 대가로 당신도 희생을 감수하고 타인을 해방할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도 “먼저 세상을 뜬 이들을 생각하면, 나는 마치 주빈들이 떠나고 초대석에 홀로 남겨진 듯, 죽은 시간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다”고 고백했다. 이 무렵 그는 콩고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신생 콩고 민주공화국은 독립을 선언하며 유엔 가입 승인을 받았고, 함마르셸드는 유엔 콩고 활동단을 주둔시켰다. 그러나 이 일로 당시 소련의 강한 공세와 함께 사임 요구까지 직면했다. 다음 해 그는 콩고 중앙정부 총리와 분리 독립을 주장한 가탕카주 수장의 회동을 주선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가 원인 미상의 추락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그는 사고 며칠 전 가까운 비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무실과 집에 있는 사적인 글들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글들을 “유일하고도 진실한 나의 모습을 그려낸 단 하나의 기록”이라고 표현하며 “나 자신과의, 그리고 신과 나 사이의 협상에 관한 일종의 ‘백서’”라고 자평했다.
1952년 시점을 밝히지 않고 적어 내려간 일기에서도 인간 함마르셸드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당시 그는 유엔 스웨덴 대표부 단장직을 맡고 있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로 시작하는 문장 뒤엔 진리를 좇으려는 그의 애씀이 담겼다.
“너는 때때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운명을 돕는 척 소소한 시도를 했고, 심지어 그것을 남들 앞에서 가장 고귀한 명분으로 포장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겉보단 속을, 세상보다 영혼을 우선하라.”
책엔 글이 쓰인 시점과 그 배경, 인용 성경 구절, 문학 작품 등 일기의 맥락을 밝힌 42쪽 분량의 주석이 실려 있다. 이번 책은 스웨덴어 원전을 바탕으로 전문을 옮긴 최초의 한국어 번역서이기도 하다. 강영안 한동대 석좌교수는 해설에서 “그에게 ‘세계’는 곧 ‘수도원’이고, 그의 ‘직무’는 곧 ‘기도’였다”며 “이제 함마르셸드를 본회퍼와 시몬 베유와 같은 반열에 놓고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