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언어 ‘시장’ 앵글로 우주를 살핀다

입력 2025-11-28 00:10
‘인피니트 마켓’은 스페이스X 등 민간 기업의 참여로 우주라는 공간이 ‘시장’의 영역이 됐다고 진단한다. 수요와 공급 등 경제학적 분석 도구를 통해 ‘우주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짚고, 미래를 전망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론 머스크는 10대 시절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같은 우주 SF를 읽으며 영감을 얻고 꿈을 키웠다. 아직도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바로 화성에 인류를 정착시키는, 즉 인류를 다(多)행성 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그 시작은 2002년 설립된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였다. 지난 8월에는 초대형 우주 발사체 ‘스타십’ 10차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머스크는 그 꿈에 서서히 다가섰다.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두 저자는 스페이스X 같은 민간 기업들이 우주라는 영역에 뛰어들면서 우주가 과학 연구나 탐사의 무대가 아닌 하나의 ‘시장’이 됐다고 선언한다. 스페이스X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닌 재사용 로켓을 상용화하면서 우주로 가는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었고, 이는 가시적 수치로 변화를 이끌었다. 2010년대 초반 1000기에 불과하던 위성은 2024년 초에는 9000기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를 기반으로 수백 개의 신생기업이 본격적으로 열린 우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저자들은 그동안 수요와 공급 등 ‘지구 경제’를 이해하는 데 쓰였던 경제학적 분석 도구를 통해 ‘우주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짚고, 미래를 전망하는 독창적 시도를 한다. 시장은 효율성과 혁신을 끌어내는 입증된 도구다. 책은 시장의 관점에서 ‘시장 구축→시장 정교화→시장 조율’이라는 순서로 구체적인 우주 경제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분석한다.

시장 구축 단계의 핵심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스페이스X가 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50년 동안 우주 산업 분야는 국가가 주도했다. 나사가 대표격이다. 1960년대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계획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국가 주도 방식이 아니었다면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같은 중앙집권적 방식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경쟁이 촉진하는 효율성과 혁신의 동력이 정부 주도 체제에서는 약해진다”는 것이다. 우주 산업 전문가 짐 캔트렐도 “달에 사람을 보내고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미국 항공우주 산업이 역설적이게도 소련식 경제 모델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화는 나사가 민간 기업을 우주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참여시키면서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가격 신호’의 부활이다. 나사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의 화물 수송 서비스를 정해진 가격에 발주하면 민간 업체가 그 비용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민간 기업은 비용을 아끼면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기 때문에 스스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 방식으로 처음 계약을 따낸 것이 스페이스X였다. 스페이스X는 2017년 기존 로켓을 재활용해 재발사하는 경이적인 기술까지 선보였다. 발사 비용은 한 번에 6200만 달러(약 900억원), 나사의 우주왕복선 발사 비용의 5%도 되지 않았다. 시장의 힘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저자들은 “시장 원리가 우주로 확장되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우주 기술이 지구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진정한 기회가 열리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장은 완벽하지 않다. 다양한 부작용에 시장 가격은 왜곡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 실패가 발생하곤 한다. 우주 경제에서도 시장 실패 사례가 등장했다. 우주 쓰레기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구 궤도에는 수명을 다한 ‘좀비 위성’이 3000기에 이른다. 여기에 로켓 상단부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도 충돌 위험을 가중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인공위성이 돌고 있는 지구 저궤도의 상황을 “폭설이 내리는 퇴근길 고속도로에 모든 차가 과속하고 있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고속도로에는 신호등도 하나 없다.

우주 쓰레기 문제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경제학 개념과 연결된다. 주인 없는 초원(공유 자원)에 사람들이 가축을 풀어 그 초원의 풀을 마구잡이로 뜯어먹게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자들은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도전을 소개한다. 민간에서는 고장 난 위성과 로켓 잔해를 수거하는 스타트업 아스트로스케일 등 업체들이 나서고 있고, 미국 정부도 우주 쓰레기에 대한 규제를 도입했다. 저자들은 이 과정을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시장 정교화’로 설명했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시장과 사회적 가치의 충돌이다. 저자들은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우주 탐사와 개발이 인류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거론한다. 저자들은 “우주 경제의 결과가 사회 전반의 가치와 목적에 어울리도록 이끌어야 한다”면서 “간단한 해답은 없지만 인간의 활동이 지구 바깥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 더 이상 그 질문들을 미뤄 둘 수만은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시장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과제를 풀려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의 우주인가. 누가 우주 자원을 소유할 것인가. 우주 경계에서 국제 갈등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지속가능한 우주 활동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 세·줄·평 ★ ★ ★
·‘우주 경제론’이라 불릴 만하다
·우주는 더 이상 공상 속의 영역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일목요연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