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변호사였던 소(小) 플리니우스는 247통의 편지를 남겼다. 책에 소개된 편지는 그 가운데 그가 서기 79년 폼페이를 잿더미로 만든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다. “여자들의 비명,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 남자들의 함성이 들렸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신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이제 신은 어디에도 없고,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던 마지막 밤이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소 플리니우스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보낸 이 편지가 없었다면, 폼페이 최후의 날은 역사서에 한 줄 정도의 기록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기록이 워낙 상세하고 묘사가 생생해 고고학자들은 이를 폼페이 유적 발굴의 지침서로 활용했고, 수많은 작가들은 문학 작품의 소재로 삼을 수 있었다.
영국의 대중 교양서 전문작가인 저자는 소 플리니우스를 비롯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는 100통의 편지를 선별, 편지가 쓰인 배경과 맥락을 함께 소개한다. 편지 작성 시기도 기원전 346년부터 최근까지여서 2000년이 넘는 역사를 ‘편지’를 통해 흥미롭게 훑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다재다능한 천재로 이름 높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에게 보낸 편지는 현대적 의미에서 ‘자기소개서’나 다름없다. 그는 “필요하다면 큰 총과 박격포, 가벼운 무기도 만들 수 있다”며 자신의 군사적 발명품을 나열하며 강점을 부각한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서 ‘평화의 선물’로 밀라노로 보내지던 다빈치의 다급한 처지를 한편으로 읽을 수 있다.
책의 원제처럼 ‘세상을 바꾼 편지’들도 다양하게 소개된다. 전 세계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소련 공산당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은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우리가 전쟁이라는 매듭의 양 끝을 지금 잡아당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며 소련 미사일을 철수하는 대가로 쿠바를 침공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라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 편지를 계기로 케네디 대통령은 결단했고 세계적 재앙으로 번질 뻔했던 위기는 사라졌다. 젊은 찰스 다윈에게 영국 해군 소속 측량선인 비글호에 박물학자 자리가 하나 남았다고 알려준 편지는 과학의 역사를 바꿔놨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5년간 갈라파고스제도 등을 항해한 뒤 과학사에 남을 ‘자연선택설’을 정립했다.
미래의 비틀스를 알아보지 못한 채 영국 최대 음반사 데카가 비틀스 매니저에게 보낸 음반 제작 거절 편지나 ‘행운의 편지’로 알려진 ‘연쇄편지’가 사실 미국 감리교 여선교사 훈련학교에서 모금 활동을 위해 시작됐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책에 담겼다. 이 밖에 모차르트가 마지막 곡 ‘레퀴엠’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에 아내 콘스탄체에게 쓴 마지막 편지, 엥겔스가 마르크스와 평생토록 서신으로 교류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키우고 우정을 다진 이야기,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급히 보냈던 전보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역사적 순간을 담은 편지들이 경매에서 고가로 거래된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직접 작성하고 서명한 편지 묶음은 21만 달러(약 3억원)에 팔렸다. 또 아인슈타인이 일본 도쿄 임페리얼 호텔의 벨보이에게 남긴 “평온하고 소박한 삶이 끊임없는 불안과 결합한 성공을 추구하는 삶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라고 쓴 친필 메모는 170만 달러(약 25억원)라는 낙찰가를 기록했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내거나 기록하고 있는 바로 그 종이를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돈을 낼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