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식시장 상승세가 주춤하니까 결국 상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든 것 같네요.”
더불어민주당이 기업의 자기주식(자사주)을 취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의무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한 재계 관계자는 26일 이렇게 말했다. 경제계에서는 그동안 민주당 코스피5000특위와의 면담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대한 우려 입장을 밝히며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전해왔지만, 여당이 끝내 연내 처리 방침을 공식화한 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식시장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주주 환원 확대와 기업 거버넌스 개선의 일환으로 보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재계가 여당의 상법 추가 개정 움직임을 주가와 연관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들 속내는 복잡하다. 일단 사업 재편 등에 활용할 수 있었던 선택지가 줄게 된다. 대한상의가 최근 자사주를 10% 이상 보유한 104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다양한 경영전략에 따른 자기주식 활용 불가(29.8%)’를 들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과거 소버린과 SK그룹의 경영권 분쟁처럼 해외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발생하면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한국 기업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이 자사주를 1년 내 소각하지 않는 기업의 이사에 대해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와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계의 우려 목소리가 크다. 이미 지난 7월 1차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전체 주주까지 확대하면서 이사가 소송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사의 민·형사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과도한 책임은 이사의 결정을 지나치게 보수화시켜 오히려 주주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며 상법에 이사의 경영적 판단에 대해선 민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문화하는 쪽으로 보완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당은 기업인의 경영상 형사 책임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배임죄 폐지 입법을 추진키로 했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나 3% 룰(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 등 올해 개정된 상법 중에 아직 시행되지 않은 내용도 수두룩한 데 또다시 법을 개정한다는 건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