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 느는데… ‘근로감독 지자체 위임’ 밀어붙이는 정부

입력 2025-11-27 00:05
연합뉴스

정부가 근로감독 권한의 지방 위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방감독관의 전문성 부족 같은 우려가 예산 심사에서 나왔는데도 노동 당국은 당초 계획보다 작은 규모로라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증가세로 전환된 상황에서 감독 주체가 중앙과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되며 행정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6일 국회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내년부터 30인 이하 초소형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권한을 지자체로 위임하기 위한 예산을 확정한 후 근거법 제정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 내년부터 광역 지자체 17곳에 근로감독 권한을 위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노동부는 정책에 대한 문제 지적이 이어지자 서울, 인천, 제주, 전북 등 4개 지자체만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초 지방감독관 300명을 선발하겠다며 이들의 교육비만 24억8400만원을 배정했는데 이 인원도 100명으로 줄였다. 노동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시점과 참여 지자체가 구체화되면서 예산도 이에 맞게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방향은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협약 제81호는 ‘근로감독관은 중앙기관의 감독 및 관리하에 둔다’고 규정한다. 근로기준의 적용은 전 지역에서 통일성·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문위원들도 “근로감독권이 분산되는 경우 ILO 협약 제81호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재 다발 사업장에 대한 감독 책임이 분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전날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재해조사 대상 산재 사망자는 총 4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43명)보다 14명(3.2%) 늘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산재 사망자가 감소했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이 증가세를 견인했다.

노동부가 지자체에 위임하려는 업무는 30인 이하 초소형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 사무로 산재 사망이 집중된 곳들이다. 30인 이하 사업장 수는 국내 사업장의 96%에 달해 감독 업무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에 넘기는 셈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20일 논평에서 “단순히 인력과 권한만 넘기는 것은 지방분권이 아닌 국가 책임 이탈”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부 소관 상임위인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지방감독관들의 전문성 부족, 지역 기업과의 유착 우려 등을 예방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며 “노동부가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