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사후 금관훈장

입력 2025-11-27 00:40

시인 서정주 김지하, 소설가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 방송인 송해,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공통점은 별세한 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는 점이다. 추서는 죽은 뒤 훈장을 주는 것을 말한다. 1973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를 포상하기 위해 제정된 1~5등급의 문화훈장 중 금관이 1등급이다.

이제 그 목록에 지난 25일 타계한 배우 이순재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의 빈소를 찾아 금관훈장을 전달했다. 정부는 “연극·영화·방송을 아우르며 70년 세월 국민과 함께하며 울고 웃으셨다. 전 연령층에서 사랑 받았고 우리 모두가 신세를 졌다”고 수여 이유를 밝혔다.

금관훈장이 추서된 이들 중 생전에 낮은 등급의 문화훈장이 수여된 사람도 있지만 기왕이면 살아 있을 때 최고 영예의 훈장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최고 훈장이 남발돼도 안 되지만 너무 노년에 주거나 사망 뒤 주면 때늦은 측면이 있어서다. 91세인 이순재는 정부 평가대로 그야말로 70년간 전 국민한테 사랑받았고, 그게 최근 몇 년의 일이 아닌데 더 일찍 금관을 받았더라면 본인이나 동료 배우들에게 큰 보람이 됐을 것이다.

생전에 금관훈장을 주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이달 초 소설가 황석영에게, 지난해에는 소설가 이문열과 연극계 원로 김정옥 연출가에게 금관을 줬다. 2023년에는 소프라노 조수미, 2022년에는 드라마 ‘오징어게임’ 배우 이정재와 황동혁 감독, 2021년에는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금관을 받았다.

그간 문화예술계에 대한 관심이 급팽창해온 걸 감안하면 향후 금관훈장 수상자가 더욱 많아지면 좋을 것이다. 가령 12년 전 은관훈장을 받은 가수 조용필이 내일 당장 금관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방탄소년단(BTS)이 각각 은관(2등급)과 화관(5등급)을 받았을 때도 아쉽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참에 정부가 문화훈장 수여 제도를 시대상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겠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