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통폐합하기로 하고 26일 이에 대한 정부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 롯데케미칼이 110만t 규모의 NCC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HD현대케미칼이 합작사를 설립해 지분을 양분하는 게 골자다. 이는 지난 8월 석화업계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된 이후 나온 첫 업계 재편안이다.
석화 산업의 위기는 글로벌 제품 공급 과잉에서 비롯됐다. 최대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2020년대부터 100% 자급을 목표로 석화 생산설비를 증설했고 중동도 원유 판매를 넘어 석화제품에 눈길을 돌렸다. 국제 에틸렌 생산의 수요 초과분은 2021년 3007만t에서 올해 4773만t으로 커졌고 국내 경기부진이 겹치며 업황에 타격을 줬다. 석화 산업을 선도하던 우리는 고부가가치 제품(스페셜티) 생산에 치중했어야 했지만 이를 간과한 채 범용제품 설비를 늘린 게 화근을 키웠다. 변화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고 안주한 대가였다. 결국 업계는 올 연말까지 270만∼370만t 규모의 NCC를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산발 빅딜은 시작이다. 정부는 전남 여수와 울산 산단의 석화 업계에도 구조 개편을 촉구하고 나섰는데 일관되게 밀고 나가기 바란다. 동시에 선제적 조치시 확실한 지원책도 강구해야 한다. 과잉 공급, 업황 부진, 수출 타격 등 유사한 여건에 놓인 철강이 다음 차례라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일부 업계가 아닌 정체된 제조업이 위기를 넘도록 구조조정의 메커니즘을 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행 분석 결과 부도 위험이 큰 기업들을 제때 정리했다면 국내총생산(GDP)이 0.4∼0.5% 더 증가했을 것으로 예측됐다. 내수 부진, 과잉 경쟁, 보호주의 무역 체제 등을 이겨내려면 기술 혁신, 고부가가치 생산 위주의 업계 재편은 필연적이다. 생존이 어려운 좀비기업은 빨리 퇴출시키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역량을 쏟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기업들도 과거 영화에 안주하다가는 하루아침에 쇠락의 길을 걸을 수 있음을 명심하고 연구개발과 초격차 기술력 확보에 힘써야 한다. 한때 국내 연봉 1위였던 석화 업계의 오늘이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