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재 증가하니 감독 책임 어물쩍 지자체로 넘기려 하나

입력 2025-11-27 01:10
연합뉴스

정부가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주무 장관이 “직을 걸겠다”고 했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올 들어 9월까지 산재 사망자는 457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3년 만에 처음 증가세로 전환했다. 그 와중에 정부가 산재 감독 책임을 어물쩍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려 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기업에는 엄정 대응을 외치던 정부가 정작 자신이 맡아야 할 감독 기능은 내려놓겠다는 것인가.

통계를 보면 안전 관리 체계를 갖춘 50인 이상 사업장은 사망이 줄었지만, 50인 미만 영세사업장과 1억원 미만 초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크게 늘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행정력이 도달하기 어려운 초소규모 사업장에 사망이 집중됐다”며 “작은 사업장 중심으로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산업안전·임금체불 감독 업무가 과중하다며 내년부터 근로감독 권한을 광역 지자체로 이관하려 한다. 이는 장관의 발언과도 충돌한다. 중앙정부조차 행정력이 닿기 어렵다고 인정한 영역을 지자체가 더 잘 챙길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 비판도 크다.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81호 협약은 근로감독을 중앙기관이 관리하도록 규정한다. 국회에서도 “근로 감독 분산은 지역별 격차를 키우고 정책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방 감독관의 전문성 부족, 지역 기업과의 유착 가능성 등 구조적 문제도 무겁다. 국내 사업장의 95.8%가 30인 이하 영세사업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국의 노동 감독을 지자체로 ‘아웃소싱’하는 셈이다.

산재는 숫자가 아니라 생명이다. 가장 취약한 현장에서 정부가 책임을 줄이려는 듯한 모습은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권한 축소가 아니라 전문 인력 확충과 중앙정부 차원의 정교한 감독 체계 강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