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가 지난해 7월 시작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국민 누구나 8회까지 무료 혹은 저비용으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엔 박수를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리적 불안이 커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국민의 마음건강을 챙기겠다고 나선 일은 누가 뭐래도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사업은 국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탄핵당한 대통령 부인이 관심을 가진 사업이라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위법적으로 배정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됐다. 최근에는 상담 품질이 보장되지 않고, 일부 현장에선 자격이 불분명한 상담사가 투입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업이 진행된 초기라 관리·감독 체계도 허술했다. 결국 이 사업의 본질이 ‘치유’가 아니라 ‘행정’으로 변질됐다. 마음을 살피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의 근본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심리상담’ 서비스에 대한 모법이 없다는 것이다. 심리상담이란 단어는 이미 70개 넘는 법률에 등장하지만 그 상담을 ‘누가’ 해야 하는지는 명시돼 있지 않다. 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상담 관련 민간자격만 4000개가 넘지만 국가공인을 받은 자격은 단 하나도 없다. 법적 기준이 없으니 아무나 상담을 표방할 수 있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심리상담사법’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리상담 서비스의 자격과 법제화 관련 추진 방안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질의했다. 복지부는 “이해당사자 간 이견이 크다”며 간담회를 통한 의견수렴을 예고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수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 국민을 위한 신속한 ‘결단’이다. 더 미루다간 초가삼간이 다 탈 판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이날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질문에 자살 고위험군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그게 답일까.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국가는 비의료 심리상담사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공인상담사(Licensed Professional Counselor)를 관리하고, 영국도 국가가 정신건강 상담을 제공하는 비의료 전문가의 자격·교육·윤리를 엄격히 감독한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심리상담사가 의료진과 협업하며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만이 여전히 자격 논란 속에서 발을 묶고 있다.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도 제도적 기반 없이 시행하면 국민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 심리상담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정신건강을 다루는 ‘전문 영역’이다. 여기에 법적 기준과 책임이 없다면 상담은 언제든 시장 논리나 정치 논쟁거리로 전락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책이나 사업이 아니다. 제대로 된 심리상담 서비스 체계다. 한국의 정신건강 지표는 이미 OECD 최하위권이다. 높은 자살률만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재난, 학교폭력, 고독사, 은둔형 청년,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공공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심리상담법은 상담사의 자격기준과 윤리규정, 교육과정, 감독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본법이 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이 안심하고 상담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국민주권 정부는 상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입법부는 서둘러 심리상담법을 제정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살피겠다는 약속은 법과 제도로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성을 갖는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