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두 날개, 그 오차 없는 균형

입력 2025-11-27 03:05

비행기 양 날개의 균형은 조금의 오차도 없다. 균형이 중요하다. 자동차의 양쪽 바퀴 역시 균형이 잡혀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자기 삶의 자리에서 롱런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균형이다. 일과 쉼의 균형, 채움과 비움, 활동과 관조, 그리고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언젠가는 무너진다.

대체로 사람들은 매우 활동적이며 부지런하게 살아간다. 삶은 곧 일이다.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다. 일평생 일하며 살아간다. 인간에게는 일하는 유전자가 있다. 무엇인가 쉬지 않고 일하며 생산한다. 인간은 일을 통해 기쁨을 맛본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을 찾고 또 행동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정체성을 찾는다. 일하다 멈추는 순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을 때 절망감을 경험한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면 혼란스러워한다. 뭔가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하는 일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려고 한다. 일은 곧 돈 성공 명성 등과 연결돼 있다. 자연히 노동의 현장은 과열 양상을 띨 때가 많다. 우열이 가려지고 치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한국 사회는 피로 사회다. 일하다 보면 피로가 밀려온다. 과잉활동으로 피로가 누적되면 결국 과로로 쓰러진다. 인간은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피로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소모돼간다.

이처럼 일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영역이다. 활동은 자기 노출이다. 활동이 많아질수록 노출이 많아진다. 노출이 많아질수록 위험수위도 높아진다. 인기가 많아지고 권력을 잡으면 성공이라 부르지만 위험수위는 높아진다. 유명해지면 자기 노출이 커진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사람들은 은근히 그것을 즐긴다. 자기를 더 강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쓴다. 과욕이 생긴다. 오버액션을 한다. 허영에 들뜬다.

일의 위험은 무엇인가. 하는 일이 잘되면 어떤 위험이 있는가.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교만해진다. 반대로 잘 안 되면 불행의 늪에 빠진다. 올라간 만큼 떨어질 때의 낙차는 크다.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다. 무엇인가 열심히 활동하고 자신의 존재가 일을 통해 입증될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때 간과하는 것은 자아 성찰의 결여다. 자신에 대해 착각한다. 일만 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쉴 틈 없이 바쁘다는 것은 유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신드롬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에 파묻혀 있다면 길을 잃어버린다. 일만 하면 안 된다. 종종 행동을 멈추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달릴 때는 앞만 본다. 질주하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시야가 좁아진다. 앞만 보고 옆은 보지 못한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잔인해진다.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행동을 멈출 때 유익이 있다. 행동할 때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사막의 짐승들을 보면 재미있다. 육식하는 맹수들의 눈은 앞만 집중해 보도록 앞에 모여 있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초식동물은 옆을 잘 보도록 눈이 디자인되어 있다. 세상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다 보면 앞만 본다. 행동만 하고 생각과 묵상, 사색이 줄면 사물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 정확히 보지 못하면 속기 쉽다. 자기기만이 무섭다. 스스로 속는다.

행동만 하면 방향을 놓친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관조의 힘이 필요하다. 그동안 잘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놓치고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야 한다. 늘 하던 일에서 잠깐 빠져나오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을 하고 있을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

결국 균형이다. 균형을 잃지 않아야 먼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 하나는 행동하는 것이고 하나는 사색이 있는 삶이다. 행동만 있으면 타락으로 가기 쉽다. 성경은 안식일을 강조한다. 7일 단위로, 일을 멈추라고 한다. 생산에 대한 저항이다. 창조의 리듬, 삶의 비밀이 여기 있다.

(수영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