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들에게 일정한 과제를 주고 수행 결과에 따라 탈락과 생존을 이어가는 영상 프로그램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과제를 통과해 끝까지 남은 참가자에게는 꽤 큰 혜택을 준다. 지난 주말 OTT를 뒤적이다 2023년 방영한 ‘피의 게임 2’를 다시 봤다. 두뇌게임·정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머리 좋고, 고학력자다. 일정 시간마다 주어지는 과제가 꽤 흥미롭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10여명의 참가자들이 이합집산하며 온갖 수를 내놓는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기도 한다. 탈락을 피하려고 각자의 본성을 쉽게 내보인다. 연합에 참여해 주도적으로 과제 해결에 나서놓고 실패하면 같은 연합의 다른 참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마음은 흔들리고, 약속은 깨지고, 책임은 뒷전이고, 동맹은 느슨해진다. 환심을 사지 못하면 곧바로 버려진다. 살아남는 게 목적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선(善)이다. 본성에 충실한 선택이 묘한 재미를 준다. 현실에서 차마 하지 못할 행동을 대신 보는 데서 오는 대리 만족감이랄까.
프로그램을 두 번째 보니 현실이 새롭게 투영됐다. 우리 사회가 경쟁과 생존만 더 강화해 왔다는 생각이다. 직장에서는 협업하자며 손을 맞잡지만 평가를 앞두면 같이 일한 동료는 금세 경쟁자로 바뀐다. 누가 더 많이 공헌했는지 계산하기 바쁘다. 실력보다 연고와 친밀감,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자 취급을 받는다. 정치권은 더 노골적이다. 12·3 계엄 이후 더욱 심해졌다. 설득보다는 계산, 논의보다는 논쟁, 협의보다는 반목이 일상이다. 흠결을 덮기 위해 더 큰 흠을 찾아내려 하고, 억지 비판에만 몰두한다. 과도한 감정 동원, 상대 진영을 향한 지속적 혐오 조장, 비난 구호만 난무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상대를 이기려는지 모르겠다. 정치는 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싸움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망각한 듯 보인다. 사회지도층에서 보이는 모습이 상식과 동떨어져 있으니 누군가를 반드시 이기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너무 당연한 듯 스며들어 있다. 성취, 성공, 부(富)만 추구한다. 타인을 넘어뜨리는 기술과 언어만 배운다. 사회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경쟁을 하기 위한 경기장이다.
사회는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다르다. 게임에서는 상금을 얻으면 끝이지만 사회에서는 승리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게임은 탈락자가 당연히 생기도록 설계되지만 사회는 탈락자가 없도록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 게임은 신뢰하지 않아도 굴러가지만 사회는 신뢰가 없으면 순식간에 붕괴한다. 게임에서는 불안이 전략적 에너지가 되지만 사회에서는 불안이 삶의 기반을 위협한다. 게임에서의 욕망은 생존의 연료지만 사회에서의 욕망은 윤리를 무너뜨린다.
공동체는 ‘마지막 한 명만 살아남는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늘의 한 건’으로 모든 성과를 가늠하지 않고, 한 번의 실수로 서로를 버려선 안 된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옆에 있는 동료가 내일 경쟁자로 바뀔 수 있다는 전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안전하게, 더 너그럽게, 더 오래 함께 살아야 한다. 보상 없는 선택도 가치 있고, 눈앞의 손해처럼 보이는 선택도 지속 가능한 토양이 될 수 있다. 기본, 상식, 윤리가 사회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는 평범한 실천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사는 내일,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향해 갈 수 있다. 인생과 공동체를 서바이벌 ‘피의 게임 후속편’으로 만들 이유도, 필요도 전혀 없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