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청와대 돌풍’ 재연될까… 지방선거 몸푸는 참모들

입력 2025-11-29 00:05

이재명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나흘 앞둔 지난 13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UAE)에 먼저 도착했다. 강 비서실장은 이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고 인공지능(AI)·방산기술·에너지·물류 등 핵심 분야 협력을 사전 논의했다. 통상 외교·안보 라인이 맡아온 외교 실무 일정에 비서실장이 투입된 것은 강 비서실장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최근 이재명정부 대통령실의 ‘3실장’(강훈식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국정 메시지와 의사결정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 비서실장, 김 정책실장의 출마설이 여권에서 흘러나오며 정치적 주목도가 더해지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외교 현장에 비서실장을 투입하거나 각 실장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은 신뢰의 표시”라며 “실장들의 발언은 곧 대통령의 의중이기도 하다”고 28일 설명했다.

세 실장은 주요 외교·경제·안보 현안에서 전면에 나서며 존재감을 확대해 왔다. 한·미 관세 협상, 각종 정상회담·다자외교 국면에서 브리핑을 도맡아 왔고, 언론에도 직접 출연해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강 비서실장은 특히 국내 현안에서도 대통령 의중을 직접 반영하는 조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공직활력 제고 태스크포스(TF) 결과 발표를 직접 담당하거나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추진을 멈춰세우는 등 내부 개혁 과제에서도 중심에 섰다.

김 정책실장은 재정·세제·부동산을 아우르는 경제 컨트롤타워로 자리 잡았다. 국회에서 야권의 부동산 정책 공세와 정면 충돌했고, 한·미 관세 협상 국면에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고성을 주고받는 등 터프한 협상 전략을 펴며 성공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도 했다.

위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안보 사안을 최종 조율하는 핵심 참모다. 한·미 관세 협상, 핵추진잠수함 도입 논의, 중동 외교 등 대부분의 대외 전략과 협상을 흔들림 없이 유지한 점 등이 대통령실 내부에서 높게 평가된다. 특히 한·미 관세 협상 당시 미국 내 주요 외교·안보 채널을 관리하며 복잡한 사안을 안정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대통령실 내부에서 세 인물의 존재감이 커지자 여권에서는 자연스럽게 지방선거 차출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강 비서실장은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김 정책실장은 전남지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출마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정책실장은 가족의 반대가 커 고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출마에 대해 확정된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의 출마를 둘러싼 우려도 적지 않다. 한 여권 관계자는 “실장들이 대통령실에서 해야 할 역할이 많은 데다 지방선거는 낙선 위험도 커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며 “현실적으로는 실장보다 수석·비서관급 중심으로 선거에 차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무수석실에서는 행정관급들까지 다수 지방선거에 차출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강원지사, 김병욱 정무비서관은 성남시장 출마가 유력하다. 이외에도 이재명의 ‘입’으로 불리는 김남준 대변인이 인천 계양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처럼 역대 청와대·대통령실은 핵심 참모들을 선거 진용의 선두에 차출해 ‘새바람’을 일으키려 시도해 왔다. 그러나 노무현정부 이후 현재까지 ‘실장급(장관급)’ 인사가 대통령 임기 중 직을 던지고 출마해 당선된 사례는 문희상 전 비서실장이 유일하다. 문 전 실장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비서실장직을 사임하고 출마했는데,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경기 의정부갑에서 당선됐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권을 쥐면서 이른바 ‘친이계 학살’이 벌어졌고, 청와대 참모들이 고배를 마셨다. 정진석 당시 정무수석이 청와대를 나와 험지인 서울 중구에 도전했으나 낙선했고, 박형준 사회특별보좌관(전 정무수석) 역시 공천을 받지 못해 부산 수영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이동관 언론특별보좌관(전 홍보수석)은 공천에서 컷오프당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진박’(진실한 친박) 논란 속에 참모들이 대거 차출됐다. 민경욱 대변인(인천 연수을), 유민봉 국정기획수석(비례대표),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당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대구 중·남구) 등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박종준 대통령경호실 차장은 낙선했다.

문재인정부에서도 현직 실장급이 사퇴 후 곧바로 출마해 배지를 단 사례는 없다. 다만 2020년 21대 총선 당시 한병도 정무수석, 정태호 일자리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비롯해 진성준(정무기획)·민형배(사회정책) 비서관 등 수석·비서관급 참모진이 대거 당선되며 ‘청와대 돌풍’을 일으켰다.

윤석열정부 역시 2024년 22대 총선에서 참모들을 대거 내보내는 ‘용산 차출’을 감행했다. 김은혜 홍보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주진우 법률비서관 등은 당선증을 거머쥐었으나 핵심 측근인 이원모 인사비서관, 전희경 정무1비서관 등은 수도권 험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윤예솔 이동환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