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쥐떼·휘젓는 불곰… 따뜻해진 지구의 경고

입력 2025-11-29 00:02 수정 2025-11-29 00:02

기후변화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동물들의 달라진 행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바뀐 기후 탓에 동물의 행동반경이 달라진 사례는 수두룩하다. 최근 들어 국내에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쥐 출몰 신고가 폭증하고 있는데 이 역시 기후변화와 연관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근래 일본 도심에 잇따라 출몰하는 곰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인간과 생활 공간을 공유하기 시작한 야생동물과의 공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28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서울시내 쥐 출몰·목격 민원’에 따르면 2020년 1279건이던 관련 민원은 지난해 2181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7월까지 접수된 민원도 1555건으로 지난해의 70%를 넘어섰다.


도심에 나타난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건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리치먼드대가 지난 1월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워싱턴DC와 뉴욕, 캐나다 토론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11곳에서 10년 전보다 쥐 개체 수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워싱턴DC는 증가율이 무려 390%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기온 상승이 쥐 떼 출몰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조너선 리처드슨 리치먼드대 교수는 “쥐 개체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기온이 많이 오른 곳이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소형 포유류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쥐 같은 소형 포유류는 기온이 낮으면 체온 유지를 위해 더 오랫동안 은신처에 머문다. 먹이도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매년 겨울이 되면 쥐들은 자취를 감추곤 한다.

하지만 도시의 겨울은 쥐에게 더 이상 춥지 않다. 쥐에게 지구 온난화와 도심의 열섬 현상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내 곳곳에 방치된 음식물쓰레기는 훌륭한 먹이가 된다. 즉, 쥐에게 도시는 먹거리가 넘쳐나는 따뜻한 서식지인 셈이다.

우동걸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도심 기온이 갈수록 상승하면서 추위에 약한 쥐들의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주택가 등장한 ‘어반 베어’

일본 아키타현 아키타시 센슈 공원에 곰이 출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판이 설치돼 있다. EPA연합뉴스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일본에서는 곰이 설치고 있다. 특히 곰이 주택가에 출몰해 인간을 습격하는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환경성에 따르면 올해 4~10월 곰의 습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196명에 달한다. 이 중 사망자도 사상 최대 규모인 13명이나 된다. 곰 출몰 신고 건수도 늘었다. 지난 4~9월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집계한 곰 출몰 건수는 2만79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3%나 증가했다. 2009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다 건수다. 이 기간에 포획한 곰은 6063마리에 달한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동안 시골 산간 지역에 종종 출몰하던 곰이 도심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는 점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16일엔 도호쿠 아키타현 노시로시 쇼핑몰 ‘이온몰 노시로점’에 곰이 나타났는데, 이 쇼핑몰은 주택·학교·관공서가 밀집한 시가지에 있다. 이달 4일 새벽에는 아키타현 아키타시 주택가에서 신문 배달 중이던 70대 남성이 곰의 공격을 받아 오른손과 눈을 다치기도 했다.

곰 퇴치용품은 이제 필수품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어반 베어(urban bear)’ 출몰 현상의 이유로 지구 온난화를 꼽는다. 백승윤 도쿄농공대 연구원은 지난 4월 발표한 한 연구 결과에서 기후변화를 곰 출몰 증가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유제류(발굽 달린 포유류)의 경우 겨울에 눈이 쌓이면 이동을 하거나 먹이를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며 “하지만 지구가 지금처럼 따뜻해지면 먹이가 되는 풀·나무가 과거보다 잘 자라게 되고 야생동물의 이동도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인간이 살고 있어 곰이 피하던 지역이 인구 감소로 ‘빈 공간’이 됐다는 것도 곰이 민가로 내려오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 자위대 대원들이 지난 5일 아키타현 가즈노시에서 곰의 민가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덫을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렇듯 곰의 습격이 이어지면서 일본에서는 곰 퇴치용품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요미우리신문 등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용품은 캡사이신 등이 포함된 곰 퇴치 스프레이다. 곰에게 방울 소리로 사람의 존재를 알려 접근을 막는 ‘곰 방울’을 찾는 사람도 많으며, 고음을 내서 곰의 접근을 막는 ‘베어 호른’은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국내서도 곰의 습격 시작될까

곰이 자주 민가로 내려오는 일은 일본과 비슷한 기후를 띠는 국내에서도 머지않은 시기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93마리의 반달가슴곰이 국내에서 활동 중인데, 이 중 57마리는 위치 추적이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대표적인 반달가슴곰 서식지인 지리산의 경우 개체 수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통제 범위를 넘어섰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곰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이전까진 만나기 힘들었던 다른 야생동물을 마주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전 이화여대 석좌교수)은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피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인 만큼 당한 뒤에 대응해선 안 된다. 어떤 문제가 예상되는지 검토해 선제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