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천지못’과 기암괴석의 향연

입력 2025-11-27 02:01
수로왕의 전설이 서린 경남 김해시 생림면 무척산 정상 인근의 천지못이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경남 김해시는 산보다 강과 평야가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세 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생림면 무척산(無隻山·702.5m)은 김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2000년 전 가락국의 전설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산 정상부 가까운 곳에 수로왕 전설이 서린 산정호수 천지못이 있다.

무척산의 한자 뜻을 풀어보면 ‘한 쌍이 될 수 없는’ ‘견줄만한 게 없는’ ‘기대지 않는’ 등의 의미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독보적인 산이라는 뜻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식산(食山)으로, ‘조선지지자료’에는 무척산으로, ‘여지도서’에는 무착산(無着山)으로 표기돼 있다. 식산이란 이름은 ‘밥상을 차려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리게 됐다는 설과 ‘북풍을 막아주고 낙동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고을을 먹여 살린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척산 등산로는 생철리에서 시작된다. 생철이라는 지명은 예로부터 철이 많이 생산되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쇠바다’ 김해의 원류인 셈이다. 주차장에서 천지못 방향으로 올라 정상을 지나 흔들바위 쪽으로 내려서거나 반대 코스로 진행하면 된다.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볼거리가 많아 수고를 보상해 준다.

삼랑진 일대를 내려다보는 하늘벽.

주차장에서 천지못으로 방향을 잡으면 등산로 옆으로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 불리는 바위 터널 통천문이 나타난다. 이어 높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암벽 탕건바위를 만난다. ‘하늘벽’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밀양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삼랑진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인생샷 명소다. 암벽등반지로도 유명하다. 곳곳에 확보물이 박혀 있다. 부산과 경남의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가지가 맞닿은 부부소나무.

숲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줄기가 다른 소나무 가지가 서로 붙어 자라는 ‘부부소나무 연리지’를 만난다. 6m가량 높이에서 가지를 합치고 있어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높이 10m쯤 되는 천지폭포 아래에 다다른다. 수량이 많지 않아 벽을 타고 흐르는 정도의 폭포수라 아쉽다.

높이 약 10m의 천지폭포.

폭포에 올라서면 길이 다소 순해진다. 10분쯤 오르면 천지못이다. 해발 535m 위치인데 정상이 가까워지는 지점의 산정호수라 신기하다. 규모만 작을 뿐 백두산 ‘천지’와 이름도 같고 생긴 것도 닮았다. 면적은 6700㎡, 저수량은 7300여t에 이른다. 둘레는 대략 300m다.

이 천지못에 전설이 하나 전해진다. 가락국 시조 수로왕이 붕어(崩御)한 뒤에 현재의 서상동 묏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왕릉을 만들고자 땅을 파니 계속 물이 나와 못처럼 됐다고 한다. 물길을 잡고자 여러 수단을 써도 허사였다. 이때 허황옥 황후를 따라 아유타국에서 온 신하 신보(申輔)가 고을 가운데 가장 높은 산에 못을 파면 해결될 것이라 했다. 그의 말을 따르니 물이 그쳤고 무사히 국장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천지 옆에는 1940년 몇몇 목사들이 일제에 항거해 구국기도의 장소로 삼았다는 ‘무척산 기도원’이 있다. 기도원이 있는 곳은 당초 국유지였으나 1979년에 기도원 측에 매각됐다. 기도원은 이후 두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는 고신대 훈련원으로 쓰이고 있다.

못 주변에 팔각정과 의자 등이 마련돼 있어 쉬어가기 좋다. 정자 옆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능선 갈림길을 만난다. 정면은 정상으로 향하고, 오른쪽 능선 아래는 하산하게 될 흔들바위 방향이다. 정상에는 무척산 신선봉으로 작은 정상 표석과 삼각점이 놓여 있다.

사람 얼굴을 닮은 흔들바위.

되돌아와 내려가면 길섶 바위 아래에 ‘삼쌍연리지’가 있다. 서어나무가 자라면서 아래에서부터 위로 세 곳의 가지가 서로 붙어 자라는 연리지다. 이곳에서 30분가량 내려서면 넓은 쉼터 옆에 흔들바위가 서 있다. 거대한 바위를 기단으로 해 아래쪽이 좁은 흔들바위가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설악산 흔들바위보다 크기는 작지만 모양새가 좋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이아몬드, 사람 얼굴 등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름과는 달리 어른 두 명이 밀어도 움직이는 느낌이 없다

바위가 흔들리는 지점이 따로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바위 옆 전망대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맞은편 작약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김해=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