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드림을 품고 미국 땅에 들어온 우리 교민들의 모습 속에서 난 신앙의 흉년과 영적 방황을 보았다. 때론 한 이민자의 마음으로, 때론 자녀를 이끌고 이국에 들어온 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또 양떼를 돌보는 목회자의 눈으로 그들의 현실을 마주했다. 그리고 흉년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모압으로 내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의 집 같은 한 가정의 비극을 함께 겪게 되었다.
그녀는 쌍둥이 여동생 살인미수 혐의로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국 언론은 이 사건을 ‘쌍둥이 사건(Twins Case)’이라 부르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사건은 이민자 가정의 실상과 정서를 보여주며 한인타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의 변호사 그룹이 그녀를 돕겠다며 한인 변호사도 파견했는데, 그 변호사의 역할은 오히려 미국 재판정에서 부정적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녀의 정신적·영적 상태를 살펴온 사역자로서 검사 요청에 따라 증인석에 섰다. 검사는 내가 매주 그녀를 만나 나눈 신앙적 반성과 태도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그녀의 마지막 공판 날, 판사가 종신형을 선고하며 단호히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람이 죽거나 물리적 피해가 치명적으로 큰 것도 아닌 사건이었지만, 재판부는 범행 동기와 사회적 파장을 매우 무겁게 판단했다. 한 변호사가 내게 말했던 미국 재판 기준이 떠올랐다. “미국 법정은 세 가지를 봅니다. 가정, 커뮤니티의 관심, 그리고 교회의 관심입니다.”
당시 사건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우리 선교회에도 구명운동 요청이 빗발쳤다. 여러 한인 단체가 연일 신문에 호소문을 게재했다. 우리는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항소 전문 변호사 론 맥그래거를 선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인 교회와 사회를 향해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LA 지역에서는 변호사 기금 마련을 위한 음악회도 열렸다. 하지만 타국에서 진행한 대규모 구명운동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기도와 노력을 다했지만, 예상치 못한 오해와 갈등이 뒤따랐다. 차가 없어 렌터카를 이용한 것조차 오해의 빌미가 되었다. 우리는 변호사 선임엔 성공했지만 항소는 기각되고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30여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세월이 흐르며 당시 사건이 우리 사역자들과 한인 커뮤니티에 남긴 교훈을 곱씹었다. 무엇보다 깊은 자성(自省)을 했다. 우리는 동정과 긍휼을 자주 혼동한다. 사람의 동정은 눈물을 흘리게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회개와 새 생명을 낳는다.
그 사건을 통해 배웠다. 진정한 사랑은 죄를 죄라 말할 수 있는 용기이며, 진정한 긍휼은 그 영혼이 다시 주님께 돌아오도록 붙드는 은혜임을. 30년의 세월 동안 변한 것은 세상뿐이었다. 하나님의 공의는 여전히 살아 있고, 그분의 긍휼은 여전히 죄인을 향해 손을 내미신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