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세계서 불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원곡 가사가 달라진 이유는

입력 2025-11-27 03:05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작곡자 프란츠 그루버의 1846년 초상화와 그루버가 자필로 작성한 악보. 위키미디어 커먼즈, 오스트리아관광청 제공

캐럴 중 이 노래만큼 유명한 것은 없다. 이 찬송가의 가사 원문은 독일어다. “Stille Nacht, Heilige Nacht(고요한 밤, 거룩한 밤)”로 시작하는 원문 전체를 번역하면 이렇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것이 잠든 때, 홀로 신실하고 지극히 거룩한 부부만이 깨어있네. 곱슬머리의 귀여운 아기,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어떤 이유에서 이 노래가 작곡됐는지 문헌적으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신빙성 있는 이야기만 모아보면 아래와 같다. 이 성탄 찬송의 작곡자는 프란츠 그루버(1787~1863)다.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가까운 마을인 안스도르프의 초등학교 음악 교사였다. 그 학교는 총 2개 반밖에 없는 아주 작은 시골 학교였다. 당시에 그루버는 안스도르프의 이웃 마을인 오베른도르프에 있는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풍금 반주자와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물론 이 풍금은 우리가 아는 풍금이 아니다. 포지티브(Positiv)라고 하는 아주 작고 원시적인 파이프 오르간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처음 불린 오스트리아 오베른도르프의 성니콜라우스 성당의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그런데 1818년 성탄절에 이 교회의 풍금이 고장 나서 예정된 성탄 찬송을 부를 수가 없게 됐다. 그때 성당의 보좌신부였던 요제프 모어(1792~1848)가 2년 전에 써뒀던 시를 꺼내어 그루버에게 줬고, 모어의 시에 그루버가 기타 반주에 맞춘 새로운 성탄 찬송을 급하게 작곡했다.

그루버는 전문적인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식구의 생계를 위해 학교 교사와 교회 관리 및 반주자의 일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첫째와 둘째 부인이 모두 사망하는 아픔 속에서 세 번이나 결혼하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는 첫 번 부인으로부터 2명의 아이를 얻었다. 그녀가 죽은 후에 20살 연하의 제자였던 두 번째 부인 마리아 브라이트푸스와 결혼해 10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12명의 자녀 중 8명이 어렸을 때 죽었다.

평범한 음악 교사였던 그루버에 의해 작곡돼 1818년 12월 24일 한 시골 교회당에서 불린 이 소박한 찬송이 오늘날 전 세계 3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지구촌의 노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노래를 미국에서 번역했는데, “Silent night, holy night(고요한 밤, 거룩한 밤)”로 시작하는 이 영어 가사는 독일어 원문의 뜻을 받들지 못한 번역이다. 원문 “모든 것이 잠들어있다”를 미국식 영어 가사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하다”로 번역했다. “홀로 깨어있다”를 “모든 것이 밝다”로, “신실하고 지극히 거룩한 부부”를 “동정녀 엄마와 아기”로, “곱슬머리의 귀여운 아기”를 “상냥하고 온순한 거룩한 아기”로 바꿔버렸다. 이야말로 원문의 뜻이 왜곡된 번역이 아닌가.

이에 반해 이 곡과 관련해 사업을 하는 오스트리아 단체 ‘고요한밤협회’가 내놓은 독일어 원문에 충실한 영어 번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Silent night, holy night everyone sleeps; alone watches only the beloved, holy couple blessed boy in curly hair, sleep in heavenly peace.(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든 사람이 잠든 때, 홀로 귀하고 거룩한 부부만이 깨어있네. 곱슬머리의 성스러운 아기, 하늘의 평화 속에 잠들어 있네.)”

한국의 가톨릭 성가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비교적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 홀로 양친은 깨어 있고 평화 주시려고 오신 아기, 평안히 자고 있네.”

한국 개신교 찬송가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영어 가사를 다시 우리식으로 옮기면서 원문의 뜻과 멀어진 가사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이 캐럴의 가사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여러 가사로 번역됐다. 그런데 다른 가사를 제치고 1863년에 미국 성공회 신부 존 프리먼 영(1820~1885)이 번역한 지금의 영어 가사가 보편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말 가사 중 가톨릭의 번역을 제치고 개신교 찬송가의 가사가 일반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에서 1863년에 성공회 신부 영의 가사를 존 C 홀리스터가 편집해 뉴욕에서 발행한 ‘주일학교 찬송집(The Sunday-School Service and Tune Book)’에 실려 교회에서부터 퍼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956년 발행된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처음 소개됐다. 이 교과서의 편집자들이 모두 개신교인이었기에 1931년 발행된 개신교 찬송가인 ‘신정찬숑가’에 있던 가사가 수록됐고 학교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간 것이다.

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