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속 계엄’ 국민 알권리 충족… 짜깁기 편집 쇼츠는 부작용

입력 2025-11-26 02:06
“쩔쩔매는 지귀연” “변호인에게 털려버린 부장판사” “내란 수괴 변호인 ‘조용~’”(왼쪽부터) 등 자극적인 내용의 제목이 달린 재판 중계 쇼츠 영상. 유튜브 캡처

‘변호인에게 털려버린 부장판사.’ 지난 10일 방청객들에게 재판 전후로 소란을 피우지 말아 달라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 한성진 재판장의 요구에 대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사들이 항의하는 모습을 담은 쇼츠에 붙은 제목이다. 재판이 끝날 때마다 방청객들이 “계엄은 정당했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이 반복되자 재판장이 질서유지에 나선 것이었지만 영상에선 판사가 부당한 요구를 한 것처럼 묘사됐다.

내란 재판 중계가 지난 9월 26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판을 시작으로 두 달째를 맞았다. 여당은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 등에 따른 법원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달 내란 재판 중계를 의무화하는 특검법 개정안까지 처리했다. 12·3 계엄 당일 대통령실 집무실 CCTV 장면이 중계를 통해 공개되는 등 국민 알권리 충족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하루 종일 진행된 재판 중 극히 일부를 1분 이내 짧은 영상으로 편집한 쇼츠 영상이 광범위하게 유통되며 재판 내용이 왜곡돼 전달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25일 국민일보가 유튜브 등에 올라온 내란 관련 재판 중계 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재판 상황을 왜곡해 전달한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왜곡 방식은 재판 내용 앞뒤를 자르는 것이다. ‘백대현 판사는 왜 재판을 공개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영상은 재판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지난 18일 증인신문 중계를 허용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날 증인신문에서 민감한 기밀정보인 비화폰 관련 내용이 나온다는 점을 이유로 중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내란수괴 변호인 ‘조용~’’ 제목을 단 영상은 윤 전 대통령 변호인이 대답한 부분을 잘라냈다. 해당 영상들은 각각 100만회가량 재생됐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들은 아예 자신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재판 중계 영상을 올리며 법정 외 투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김 전 장관에 대한 기소가 불법이다’ ‘파견검사가 불법 공소유지를 하고 있다’ 등의 변호인 주장만을 잘라서 올리는 것이다. 특검 측이 이후 재판에서 반박한 장면이나 재판부가 이미 변호인 측 주장 상당수를 기각했다는 사실은 영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예 “(계엄 당일) 민주노총에 의해 국회가 장악된 상황이었다” 같은 허위에 가까운 변호인단의 법정 주장만 편집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한 재경법원 부장판사는 “재판부마다 천차만별인 재판 진행 스타일이나 재판 내용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짜깁기한 영상이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다”며 “자칫 왜곡된 정보에 의해 형성된 여론이 법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 당사자들이 카메라를 의식해 오히려 더 극단적 주장을 쏟아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현재 언론사가 올리는 영상 섬네일(표지), 쇼츠 등의 내용을 확인한 뒤 조치하고 있지만 일반 유튜버가 올리는 영상 등에 대한 단속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판 중계의 득이 전반적으로 크다고 평가하면서도 영상 유통 방식에는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이근우 가천대 법대 교수는 “말의 앞뒤를 자르고 특정 발언을 자극적으로 가공해서 만든 영상들은 재판 진행의 이해를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