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간 이어진 ‘공무원의 복종 의무’ 조항에 대한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공직사회 의사결정 구조에도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일단 ‘상명하복’이 고착된 공직문화에 중대한 균열을 낸 조치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법 개정 취지와 무관하게 상사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위법한 명령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일선 공무원들의 혼란이 커질 것이란 시선도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25일 정부의 국가·지방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소식에 성명을 내고 “76년간 공무원 노동자들을 옭아맸던 ‘복종의 의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며 반겼다. 이들은 “상관의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대신 합리적인 대화와 법치에 기반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겠다는 제도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맹목적 복종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목격했다”며 “이번 법 개정은 공직사회가 다시는 헌법 유린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게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역시 “공무원을 수동적 집행자가 아닌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행정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환영했다. ‘영혼 없는 공무원’ 오명을 벗을 중대한 조치라는 평가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수동적인 업무 태도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되고 있는데, 거기 맞춰 이뤄진 조치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일선에서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위법성 판단 기준이 불명확해 업무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방직 공무원은 “업무를 할 때 문제는 재량 행위에서 나온다”며 “재량은 판단의 문제라 누가 맞다고 할 수가 없다. 또 다른 갈등이 초래돼 업무가 늦어질 수 있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을 위반한 지시의 경우 지금도 징계권도 있고, 감사도 있고, 인사 조치도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 법 개정이 공무원들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공무원도 “12·3 계엄처럼 명확히 위법한 건 딱 떨어지는데, 그 외는 (판단이) 좀 어려운 문제”라고 전했다.
정부도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 인식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법예고 기간에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객관적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구체적 기준은 우리가 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시행령이나 복무규정 개정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것”이라며 “제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홍보·교육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갖출 정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위법으로 판단하고 거기에 대해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위법한 사항이 이행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현장의 혼란이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김용헌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