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현역’ 천상 무대로 떠나다

입력 2025-11-25 19:12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배우 이순재가 25일 별세했다.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일평생 연기에 헌신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영원한 현역’ 배우 이순재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새벽 서울의 한 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고령에도 철저한 건강 관리로 방송, 영화, 연극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고인은 지난해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KBS 2TV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했다.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연극에서 중도 하차했으나 병상에서도 대본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 재학 시절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주연의 영화 ‘햄릿’(1954)을 보고 매료돼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배우로서 그의 삶이 곧 한국 대중문화 역사 그 자체였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를 거쳐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140편의 드라마 등에서 주역을 맡았다. 1991~92년 시청률 65%를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에선 가부장적 인물 ‘대발이 아버지’ 역으로 당대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연기 열정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허준’(1999) ‘상도’(2001) ‘이산’(2007) 등 사극에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 ‘지붕 뚫고 하이킥’(2009)에서는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야동 순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사랑받았다. tvN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2013~18)에서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체력과 열정으로 시청자들에게 ‘멋진 어른’의 전형을 보여줬다.

2021년 연극 리어왕에 출연한 모습. 예술의전당 제공

팔순을 넘어서도 연극 ‘장수상회’(2016) ‘리어왕’(2021) 등으로 관객과 호흡했다. ‘리어왕’에서는 200분 공연 분량의 방대한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2023년에는 연출자로도 나서서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 당선된 당시의 이순재. 국민일보DB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중랑갑에 당선돼 잠시 정치권에서 활동했다.

지난 1월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선 장면. KBS 제공

고인은 2019년 인터뷰로 만났을 당시 “1960~70년대 ‘딴따라’ 소리를 들을 때도 예술적 창조 활동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연기엔 완성이 없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KBS 역대 최고령 연기대상을 받고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한 것이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정부는 이날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장지는 경기도 이천 에덴낙원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